지난 달 주일오후 타코마의 K교회에서 사역 설교를 마친 후, 세미나를 참석하기 위해 급하게 LA로 가야 했다. 경제 침체의 탓일까? 몇 년 전에 비해 확실히 공항이 예전처럼 붐비지는 않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탈 항공편 대합실에 조금 여유 있게 도착했다.

내 앞에 키가 크고 마른 한 젊은 동양인이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한국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큰 한글 성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와, 대단하네 이렇게 산만하고 마음이 부산한 공간에서 차분하게 성경을 읽다니,,,’ 한 순간 내 자신이 좀 머쓱했다. 무슨 사연이나 결심이 있는 걸까? 저렇게 빠른 속도로 읽어가는 것이 왠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오늘은 일찍 탑승하겠다”는 안내방송으로 기내로 들어갔다. 아까 보았던 젊은 청년도 중간 뒷부분 나보다는 앞자리에 이미 착석해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에도 그는 기내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기대하던 세미나를 듣고 또 샘 사역을 알린다는 기대로 일찍 친척의 집을 나서서 세미나장소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강의실은 세계 각지에서 온 선교사들과 목회자들로 붐볐다. 혹 아는 분이 없나 두루 살피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어제 공항대합실에서 그렇게 열심히 성경을 보던 청년 같은 분이 내 앞줄 옆에 있지 않는가! 우리는 서로 놀라며 “저 혹시 어제, 씨택공항에서,,,”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Mukilteo에 사는 B목사입니다” “아, 목사님이라 그렇게 열심히 성경을 보았군요,,,” “아닙니다. 뭐, 그래서 만은 아니구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날 점심을 같이했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나는 어제의 궁금증이 발동했다. “어제 분주한 공항대합실에서 성경을 그렇게 열심히 읽던데 무슨 결심이 있었는지요?” 그는 조금 망설이다 “3개월 전, 둘째 아이가 7개월이 되었을 때, 조산하는 바람에 현재 다운타운에 있는 S병원 인큐베이터에 있어요. 아기의 생명이 참 위태로웠고,,, 그래서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다, 하루 2시간씩 성경을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그때 하게 되었어요” 나는 그 젊은 목사님의 사연에 어제의 일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다음 날 그 목사님이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먼저 말을 건네왔다. “목사님, 아기가 내일 모레 퇴원해도 된다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와, 얼마나 좋으세요?” “그걸 어떻게 말로다 표현해요, 저보단 집사람이 더 고생이 많았죠,,,”라며 말하는 B목사님의 얼굴에는 그 동안 1주일 한번씩 병원을 방문하며 한쪽으로만 젖을 물려야 했던 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도 깊이 묻어 있었다. 산모들에게 큰 고통인 젖 몸살, 나오는 젖을 아이에게 그때 그때마다 주지 못해 한쪽은 곪아서 결국에는 제거수술을 해야 했다니,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 아기 또한 얼마나 엄마의 젖을 찾았을까! 천하보다 소중한 아기의 생명을 살리려 했던 그들의 결심과 3개월 동안 힘들었을 아가의 살려는 의지에 가슴이 찡했다.

그런데 얼마 전, 북녘에서 지하교회를 조직하여 그간 숨어서 예배를 드렸던 교인들을 색출했다는 뉴스를 통해 들었다. 그 동안 우리가 반신반의했던 지하교회는 결국 존재했었고, 먹을 것과 치료약이 부족한 생존의 어려움에도 생명을 걸고 신앙을 지키며 복음을 전하려던 북녘의 신자들이 당할 고초에 마음이 아프다. 아기의 생명이 살아나기를 위해 하루 2시간씩 성경읽기를 결심했던 그 젊은 목사님처럼, 우리도 현재 생명의 위협 속에서 우리들의 구조를 바라고 있는 북녘의 동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한가지 정도는 있지 않을까? 우리들이 그들을 살리려는 결심과 그들이 살아나려는 의지를 놓지 않기를 오늘도 기도 한다.

-SAM_시애틀지부장 DANNY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