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국생활 30여 년이 되니 정확히 어느 달에 진달래꽃이 만개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또 그 꽃의 이름이 진달래인지 철쭉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들판에 아지랑이가 가득히 올라올 무렵, 아직도 바람끝이 차가운데 가까운 산등성이에 분홍빛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기억만 납니다. 땔감을 얻기 위해 긁어 놓은 갈퀴자국 사이로 만지기도 아까운 진달래꽃이 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진달래가 피면 봄이 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려운 보릿고개도 넘어가고 곧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여름이 다가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시골 농촌에서 배웠던 삶의 철학은 "인내"였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참을성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부러 참는 것이 아니고 그냥 참는 것이 삶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떤 일을 참고 인내하며 기다릴 때에 항상 아름다운 결과를 그려보며 견딥니다. 최상의 결과를 마음의 화판에 그려봅니다. 그런 최상의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제가 참고 견디는 것이 너무 무가치할 것 같아 다른 그림을 그려볼 수가 없습니다. 겨울을 지나면서 제가 그리는 그림의 제목들은 "화목, 사랑, 용서, 축복, 창조, 기쁨, 영광, 평안......" 이런 것들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장의 그림들이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겨울에는 추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보다 따뜻한 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더 존경스럽습니다. 희망찬 내일을 미리 보고 와서 이야기해 주는 사람, 수술의 상처가 아물고 난 후에 장수하며 살게 될 건강한 날들을 미리 이야기해 주는 사람, 그 말을 듣고 순종하면 큰 일 날 것처럼 부모의 옆구리를 쥐어박고 달아나는 자식들을 보면서 장차 저런 아이들이 진자 효자효녀가 된다고 미리 들려주는 사람들, 이것 저것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반드시 갑절로 다시 찾는 날이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자처럼 다짐해주는 사람들, 그렇게 이야기해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게 해주시라고 남몰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저는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