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눈에 보이는 글마다 오바마 일색입니다. 저도 이 일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참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지난 주간, 저의 생각은 죽음에 빠져 있었습니다. 수요일에는 고 홍선옥 권사님의 하관 예배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직접 뵌 일은 없지만, 그래도 한 가족의 슬픔에 동참하는 일이었으므로 심적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아침 일찍 또 하나의 비보를 전해 들었습니다. 1년 넘게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열 네 살짜리 소년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급히 집에 가 보니 아직도 그 아이의 몸이 따뜻했습니다. 오열하는 가족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몹시 무거웠습니다. 그 날 오후에는 오랫동안 투병하고 있던 교우께서 위독하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파리한 모습으로 가쁜 숨을 쉬고 있는 그분의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다음 날, 그 소년의 장례 설교를 준비하려고 컴퓨터를 켜니, 한국에 있는 제자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있을 때 저의 조교로 일했던 제자 하나가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올 해 나이 35세, 결혼을 앞에 두고 있는 전도사입니다. 얼마 전, 교회를 개척하여 열심히 목회하던 중에 변을 당했습니다. 소식을 전한 사람은 혹시 제가 그 제자를 못 알아볼까 하여 사진까지 첨부해 보냈습니다. 그 사진에는 그가 밝게 웃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은 멍멍해졌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정도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무뎌지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왜?”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두 죽음 앞에 마주서게 되었습니다. 그 소년의 장례를 위해 말씀을 준비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들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겠지만, 적어도 저 자신에게는 말이 되는 말을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변호하는 말을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소년과 그의 가족이 보여 준 놀라운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그 소년은 나이에 비해 놀랍도록 성숙한 아이였습니다. 그는 죽음이 다가오는 줄 알고 아버지에게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습니다. 작년 11월에 우리 교회에서 장기 기증 캠페인을 했었는데, 그 소년이 그것을 유심히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을 너무나도 사랑한 아버지는 그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가 사망하자 약 2시간 후에 병원에서 시신을 데려가 심장과 눈과 연골을 떼어내고 시신을 영안실로 보내 주었습니다. 소년의 시신은 아무 흔적 없이 고운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참으로 장한 아이입니다. 열 네 살짜리 아이가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고 장기를 기증할 결심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생은 대답 없는 질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실로 대답 없는 질문에 봉착하는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목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그런 질문으로 인해 믿음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질문이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게 찾을 수 없지만, 그 질문과 의혹을 상쇄하고도 남을 감동과 은혜를 주시니, 그 덕분에 살아갑니다. 교우 여러분, 부디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