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0일은 감동의 날이었습니다. 비록 직접 참석하지는 못하고 TV의 화면을 통하여 관망하기는 하였지만 148년 전에는 노예이었고, 45년 전에는 민권의 평등이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한 소수시민이었고, 43년 전에는 꿈만 꾸었던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한 사람이 미국의 최고 정상에 올라 성경에 손을 언고 선서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개회기도-축가-축하연주-부통령선서-대통령선서-취임연설-축시-축도 등의 순서순서를 지켜보면서, 미국은 역시 기독교적인 가치와 문화 위에 세워진 나라임을 다시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모든 사람은 자유로우며, 모든 사람은 온만한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보장받고 있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 .... 우리의 지켜 내려오고 있는 정신을 재확신할 때가 당도했습니다”라는 오바마의 취임연설은 미국이 하나님의 약속, 즉 하나님의 진리를 바탕으로 건립됐고, 지금까지 세계최대번영강국으로 발전되어 왔음을 재천명하며, 앞으로도 그렇게 전진해 나아갈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바마의 대통령취임연설이상으로 미국이 실로 기독교적인 문화의 기반 위에 정립되어 있음을 느끼게 해준 것은 취임연설직후 낭송된 취임축시이었습니다.

그 시의 제목은 “이 날을 위해 노래를 찬송하여라” (Praise Song for the Day)이고,

매일 우리는 우리 일에 몰두하고 지낸다, 서로 스쳐 지나가고, 서로의 눈빛을 포착하거나 아니하거나,
말할려고 하거나 말하고 있거나.

라고 일상적인 미국민의 생활을 표상하면서 축시는 시작합니다. 엘리자베스 알렉산더 (Elizabeth Alexander, 1962- )가 이 시를 낭송하였습니다. 그녀는 뉴욕 할렘가에서 태어나 워싱톤디시에서 자란 흑인시인으로서 펜실바니아대학에서 영어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 예일대학에서 아프리칸 아메리칸 연구를 가르치는 교수로 있고, 하바드-레드클리프 대학원의 펠로우로 제직하고 있는 지성시인입니다.

축시의 제목에서부터 기독교적인 문화의 냄새가 풍기는 듯합니다. 첫째 ‘이 날’입니다. 물론 시인은 이 날을 오바마가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2009년 1월 20일 표시하는 것이겠지만, 시인이 형상화시키고자 했던 것은 이 날이 바로 하나님의 날, 즉 하나님이 이미 오바마를 미국대통령으로 뽑히게 하시어 취임하게 마련하여 택정하신 날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루어 지는 모든 것은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하나님의 날,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진리입니다.

둘째, ‘노래를 찬송하여라’입니다. ‘노래’대신에 ‘하나님’을 집어 넣으면 성경시편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나오는 구절이 됩니다. 시인은 하나님대신에 노래를 대입해 놓고 노래의 내용을 읊으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계획을 나타내고자 한 것입니다.

시인이 담고자 한 노래의 내용은 3가지입니다. 첫째노래내용은 ‘몸부림침’ (Struggle)입니다.

몸부림침을 위해 노래를 찬송하여라; 이 날을 위해 노래를 찬송하여라.

몸부림침은 미국민이 지금의 미국이 형성되기까지 오랜 세월 각고의 노력을 쏟아 부었던 고난의 여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고난의 몸부림침이라고 하더라도 장차 다가 올 영광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표출한 것입니다.

둘째노래내용은 ‘모든 손으로 쓰여진 표시’ (Every Hand-Lettered Sign)입니다.

모든 손으로 쓰여진 표시를 위해 노래를 찬송하여라; 부엌식탁에 둘러 앉아 고안해 내는 것.

모든 손으로 쓰여진 표시, 즉 부엌식탁에 둘러 앉아 고안해 내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시인은 2개의 표시, 고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이들은 “내 이웃을 내몸과같이 사랑하라”는 것으로 살아간다.
다른이들은 “첫째 해를 끼치지 말아라”라는 것으로, 또는 “필요이상 취하지 말아라”라는 것으로.

손으로 쓴 표시, 부엌식탁에서 고안해 내는 것은 현재 미국민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에서 표출되는 2가지의 가치를 의미합니다. 하나의 가치는 “이웃을 내몸과같이 사랑하라” (Love thy neighbor as thy self)이고 둘의 가치는 “첫째 해를 끼치지 말아라” (First do no harm)이거나 “필요이상 취하지 말아라” (Take no more than you need)입니다. 전자가 이타주의적인 사랑을 말하는 기독교적인 미국민의 가치관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근대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개인주의적인 미국민의 가치관을 말합니다.

시인은 이에서 머무르지 않고 셋째노래내용, 즉 ‘저 빛 가운데 앞으로 걸어 전진하기’ (Walking Forward in that Light)를 읊고 있습니다.

가장 힘있는 단어가 사랑이라고 한다면, 부부사랑, 자식사랑, 나라사랑을 뛰어 넘는 사랑.
넓어져 가는 빛의 풀을 전개하는 사랑. 미리 짐작한 불평이 필요치 않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오늘 예리한 섬광속에서는, 이 겨울대기안에서는,
어떠한 것도 만들어 질 수 있고, 어떠한 문장도 시작될 수 있다.
벼랑끝에서, 가장장리에서, 첨두에서 --
저 빛 가운데 앞으로 걸어 전진하기 위해 노래를 찬송하여라.

‘저 빛’이란 무엇입니까? 저 빛이란 바로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기독교의 사랑입니다. 시인은 그 사랑을 가장 힘있는 단어, 진리이라고 하였고, 모든 사랑을 뛰어 넘는 사랑이라 나타냈고, 확대돼가는 빛의 풀을 펼치는 사랑이라 표출하고 있고, 어떠한 불평도 필요치 않는 사랑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빛 안에서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노래를 찬송할 것을 새 대통령이 탄생하는 오늘 요청하고 있습니다. 아니 명령하고 있습니다.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것이야 말로 미국이, 인류가 반드시 가야 할 정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몸부림치는 것, 2개의 가치가 공존하는 것, 사랑의 빛 안에서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고, 하나님의 통치이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그 것들을 위해 노래를 찬송하는 것은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백 순, 미국노동성선임경제학자/지스카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