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참으로 의미있는 한 주간이 될 것 같습니다. 월요일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님을 기억하는 날이고, 바로 그 다음날인 화요일은 킹 목사님과 같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인한 놀라운 열매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이 되는 제 44대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입니다. 아마도 인권운동에 참여했던 그 누구도 이 날이 이처럼 빨리 오리라고는 생각치 못했을 겁니다. 물론 흑인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모든 차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날만큼은 그동안 바라고 소망하는 가운데 투쟁하고 노력했던 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히 증명해 주는 날인 것만은 확실한 것입니다.

근 20년 전 신학교 있을 때 독일의 통일 소식을 듣고 참으로 쇼크를 받았던 일이 기억납니다. 은연 중에 그러한 일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치부해 버렸던 나의 생각이었기에 현실로 나타난 그 “놀라운” 사건을 보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그 때 조국의 남북통일도 진정 가능한 일이구나 하고 절실히 깨달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 때의 감동은 색을 잃고 빛이 바래 버린 생각이요, 소망이고 기도가 되어 버린 것을 보면서 그 때의 감격을 되살려야겠다는 마음의 동요가 새롭게 일어남을 느낍니다.

2차 대전 후에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인간이 벌려놓은 엄연한 악의 현실 앞에서 신의 죽음을 읊조리며 망연자실 하던 이들에게 다시 한번 선명한 희망의 메시지를 가지고 세상을 깨웠던 “희망의 신학”의 창시자 몰트만 박사가 몇 년 전에 한국을 방문하고 가졌던 강연회에서 “희망에 대해 회의하고 공격하던 청중들에게 (몰트만 박사는) 지난 시절의 뜻밖의 사건들, 즉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독일의 통일,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 체제의 평화적인 붕괴 등을 예로 들면서, ‘역사는 우리의 작은 믿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왜 우리는 더 위대한 희망을 품지 않았는가?’고 반문하였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진정 우리는 왜 더 위대한 희망을 품지 않았을까 자문해 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시라고 믿고, 전하고 선포하는 우리가 왜 가나안 땅 입구에서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고 울며 통곡하며 죽기를 소원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연약한 믿음 밖에는 갖지 못했을까 하는 자문을 해보게 됩니다.

이번 화요일은 그런 의미에서 저희 모두에게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같은 유색 인종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앙인으로서, 이 날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 그러나 놓치기 쉬운 그 모습을 잠깐이나마 확실하게 볼 수 있어야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진정 그 날이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포하는 날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바람들이 아닌, 진정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함 가운데 모세가 보았던 떨기나무와 같이 우리 마음을 가득히 태워오는 그러한 하나님 나라의 꿈과 소망, 희망을 또렷하게 선포할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광야같은 삶이요 세상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이 주시는,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더 확실한, 그렇기에 마음 가득히 확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희망을 선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분명히 이루실 그 일을 (사 9:7) 믿음 가운데 다시 한번 꼭 붙잡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