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미국 예일(Yale)신학대학에서 획기적인 일이 일어났다. 전 세계의 기독교와 이슬람 지도자들이 모여 ‘하나님과 이웃 사랑하기’라는 주제로 컨퍼런스를 개최했는데 여기서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전 세계의 이슬람교를 대표한다는 지도자들과 실질적으로 세계 기독교인들을 대표하는 유명 인사들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 자유를 지지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미 이슬람권에서도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종교의 자유라는 것은 개종의 자유와 전도의 자유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이슬람권에서 종교의 자유가 실현된다면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만 된다면 이슬람권의 주의 일꾼들이 더 이상 신변의 안전을 염려하지 않고 마음껏 사역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처럼 좋은 소식에도 석연치 않은 점은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번에 발표한 합의문 중에서 ‘양 종교 간의 이해와 협력을 위한 방안’이 논의되었는데 매년 한 주간을 정해 성도들에게 상대편 종교에 대해서 소개하거나 가르치도록 하는 방안과 양 종교의 중요 서적들에 대해 소개하며 흔한 질문과 답들을 웹사이트에 올리는 등 실제적인 방안들이 계획되었다는 것이다.

이슬람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서명한 것 실천할 수 있을까

이번에 참석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국제단체 대표나 교단 총회장, 대형교회 목사, 대학 총장 등이었다. 이들 한 사람이 갖는 영향력이란 대단한 것이다. 이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헌법과 법률 조항들을 통해 완벽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서명하면 최소한 자신이 속한 단체나 교단, 교회, 대학에서 이를 실천하는 데 아무런 장애 없이 곧바로 실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 지도자들은 과연 자신들이 서명한 것을 자기 나라에서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인물들일까. 절대로 아닐 것이다. 심지어 대통령이라고 해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슬람 국가에서 어떤 법의 효력이 발생하려면 반드시 코란과 샤리아의 기준에 맞는 것인지를 검토하고 이 과정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슬람 국가도 기독교인들에게 완벽한 종교의 자유를 주자는 안건에 찬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코란과 샤리아의 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를 들면 알카에다는 지난 달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세계 종교 간 회의를 주재한 사우디아라비아 압둘라 국왕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하고 다른 무슬림들에게도 그를 살해할 것을 촉구했다. 세계 종교간 회의에는 유대인들도 참석하는데 코란에 의해 돼지와 원숭이라고 저주받은 유대인(Q2:65, Q5;60)과 테이블에 마주 앉아 협상을 하는 자체가 알라를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평화협정 맺은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은 피살

한 가지 예를 더 든다면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 암살 사건을 들 수 있다. 안와르 사다트는 이슬람국 대통령으로서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을 원했다. 그는 1977년 이스라엘을 방문해서 평화안을 제출하고 화해 무드를 조성해 78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79년 드디어 미국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카터 대통령이 중재한 가운데 이스라엘의 베긴 수상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그 결과 사다트 대통령은 아랍연맹과 이슬람회의기구(OIC)에서 제명을 당했으며 결국 81년에 이슬람 과격분자인 칼레드 이슬람볼리에게 암살당하게 된다. 칼레드 이슬람볼리는 대통령 암살범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당했는데 이란에서는 그의 영웅적 행동(?)을 길이 보존하기 위해서 테헤란 북부의 한 도로를 그의 이름으로 명명했으며 그의 얼굴을 담은 기념우표를 발간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그를 순교자로 기리는 영화를 제작, 상영해 이집트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대통령 암살을 직접 지시한 ‘쉐이크 오마르 압돌 라흐먼’(Sheikh Omar Abdul Rahman)이 체포되었는데 그는 세계최대의 이슬람신학교인 알 아자르(Al Azhar)대학에서 코란과 샤리아를 가르치는 교수였다. 법정에서는 그에게 대통령 암살을 사주한 간접살인죄를 적용하여 처벌하고자 했지만 그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자를 죽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코란을 근거로 강력하게 주장하여 결국은 무죄 혐의를 받았다.(Mark Gabriel ‘Islam & Terrorism’ Front Line A strang Company, 2002, p162) 어떤 이슬람 국가의 법도 코란과 샤리아를 뛰어넘지는 못하는 것이다.

코란은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삼지 말라고 말해

그러면 코란에는 기독교인들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서 어떤 지침을 주고 있을까?

“무슬림들이여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그리고 보호자로써 택하지 말라. 그들은 서로가 친구들이라. 그들에게로 향하는 너희가 있다면 그는 그 무리의 일원이거늘 알라께서는 이 우매한 백성들을 인도하지 아니하시니라.”(Q5:51)

“무슬림들이여 너희 종교를 조롱하는 자들을 친구로 삼지 말라. 이들은 너희 이전에 성서를 받은 자들로 믿음을 배반했노라. 너희가 믿는 자라면 알라만을 두려워하라.”(Q5:57)

위의 두 코란 구절은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즉 화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할 때마다 ‘알라로부터 저주받은 자들과 방황하는 자들이 가는 길이 아닌 바른 길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Q1:7) 이 구절에 대해 이슬람의 모든 주석가들은 한결같이 ‘저주받은 자들’은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이며 ‘방황하는 자들’은 기독교인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슬람, 좋은 종교로 위장하기 위한 거짓은 용서

그러므로 이슬람측 대표들은 어느 누구도 이번 컨퍼런스에서 기독교인 대표들과 맺은 ‘양 종교 간의 이해와 협력을 위한 방안’들을 본국에 가서 실천할 수 없을 것이다. 실천할 수 없어도 실천하겠다고 말할 수는 있다. 자국의 여건상 실천이 불가능한 일이라며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코란에 이런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알라께서는 그대들의 맹세 시에 경솔한 말을 책하지 않으신다. 다만 그대들이 마음으로 행한 일만은 책하신다. 알라께서는 관대하시고 자비로우시다.”(Q2:225)

그러니까 이슬람을 좋은 종교로 위장하기 위한 거짓 맹세는 알라께서 용서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슬람의 ‘타끼야’(Taqiyah) 교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런 성명을 발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로 각인시킨다.(먼저 화해를 요청했으므로)
둘째,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들을 앞잡이로 삼아 합법적으로 교회 안에서 이슬람이 전파되도록 한다.(최소한 1년에 한 주간 설교한다는 이번 합의를 통해서)
셋째,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을 유일신 종교로 대등하게 보는 시각을 확산시킨다.
넷째, 이슬람의 숨겨진 정체를 아는 사람들이 폭로하는 내용을 영향력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입을 통해서 방어한다.
다섯째, 어쩌면 이들은 약속을 지킨다는 명분하에 이슬람식으로 왜곡된 코란의 ‘마리얌의 아들 예수’에 대해 가르칠 것이다. 이것은 이번 컨퍼런스 이전에도 항상 그렇게 가르쳐 왔다.

이슬람의 전략으로 파생될 문제에 대응책 찾아야

기독교계에서는 이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대응을 찾아야 할 것이다.

첫째, 이슬람의 알라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신이라는 거짓말에 속게 된다.
둘째, 무슬림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가능성을 원천봉쇄한다.(돌아올 필요를 못 느낄 것이다.)
셋째, 기독교계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이 운동을 찬성하는 분들과 이슬람의 정체를 알고 속지말자는 분들 간의 분열)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