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31일 강연을 이끈 이상남 목사의 강의실은 부흥회를 방불케 했다. 자리가 부족해 강의실 밖 복도까지 성도들이 줄을 섰다.

이 목사는 “한때 교회가 몇 천의 성도가 모이는 규모로 부흥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가정이 불화하고 부부 모두 건강이 안 좋아지는 등 나중에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신호가 있었는데 당시로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부흥회를 한차례씩 갔다 오면 교회는 부목사를 중심으로 쪼개지는 일이 몇 차례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렇게 교회는 3백여 명이 남았다. 결국 이 목사는 대학노트 한 권을 들고 기도원에 올라갔다. 땅에서 풀지 못하면 하늘에서도 풀리지 않는다는 말씀을 붙들고 자신이 그간 부족해서 원망했던 이들을 모두 용서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한두명 생각날 줄 알았는데 1백여 명의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한명 한명 눈물로 사과글을 적고 나서 기도원을 내려왔죠. 그리고 편지를 붙이고 일일이 찾아가서 무릎꿇고 사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시 화해하고 교회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전직 교역자와 교우들의 가정을 방문해 초청장을 돌려 화해잔치를 몇 차례 가진 것은 당시 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사건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이 목사는 “내가 왜 이래야 하는지 나도 하나님께 물어볼 때가 있었다. 당시 경제적으로 교회 론 등이 밀려 500만불 원금과 이자까지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30일 작정 기도를 이어갔는데 마지막 3일을 남겨두고 심장에 이상이 생겨 수술까지 받았다. 그래도 3일을 채우려 강대상 앞에 침대를 두고 누워 3일 기도를 마쳤다. 무슨 말도 안 나왔다. 눈물만 나더라.”

그리고 가장 크게 론을 한 은행에 편지 한 장을 보냈다. 300만불 빌린 돈을 120만불로 조정해 달라는 편지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성사됐다.

이 목사는 자신의 체험이 감히 욥의 체험이 아니었을까 한다며 고난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성도들이 되자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