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 이전에 마음에 음란한 생각을 담고 있습니까? 더러운 감정을 가지고 사람을 봅니까? 그러면 벌써 그 자체가 칠 계명을 범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행동보다도 마음에 있는 동기를 먼저 보시기 때문입니다.

동기가 나쁜데 어떻게 행동은 선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마음이 벌써 잘못됐는데 아무리 행동이 선하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 선한 행동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안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자를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이 말씀은 자연스런 성 본능이 악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해 하면 안됩니다. 젊은이들이 이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거나 성적인 충동을 받는 것이 악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부부간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을 죄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자가 남자를 보면서 남자가 여자를 보면서 마음에 금지된 정욕을 허용하는 것이 간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금지된 정욕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간음하는 사람은 적절한 상황만 주어지면 행동에 옮기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여러분 도둑은 기회만 있으면 쉽게 훔칩니다. 왜냐하면 밤낮없이 생각하는 것이 훔치는 생각이기 때문에 기회만 주어졌다 하면 훔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음란한 생각을 하고 있다든지 부정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늘 갖고 있기 때문에 기회만 주어지면 행동에 옮기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님이 이렇게 보시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이미 잘못된 것은 벌써 계명을 범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표준에 맞추어서 간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을 지키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밤이면 문단속을 합니다. 좀 예민한 사람들은 문을 잠가놓고 들어왔다가 불안해서 행여나 문이 열렸나 하고 또 한 번 가봅니다. 너무나 세상이 독해지고 악하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문단속만 잘 하면 안됩니다.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마음 단속을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이 세상에 지켜야 될 가치가 있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특별히 마음을 지켜야 하는데,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단속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눈을 뽑을 사람처럼 비장한 결심을 가지고, 팔을 찍으려고 하는 사람처럼 비장한 결심을 가지고 마음을 지키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