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게 개인적인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딸아이가 키가 크지 않는 것입니다. 이 아이가 나중에 다 자라서 ‘아빠가 작아서 나도 작다’라는 말을 들을 까봐 마음이 조마조마 합니다.

성경에도 이런 아비와 같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말씀을 주신 곳이 많습니다. 바울 선생님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너는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라’고 하신 말씀도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또 히브리서 5장12절에도 6장2절에도 우리에게 말씀의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으니 답답하다, 어서 영적 성숙으로 나아가라’고 말입니다.

‘성숙’은 많이 알고 얼마나 똑똑하냐에 결정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르게 만들어 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영특하여 천재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어른이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3살부터 말을 다 깨우치고, 제 3외국어를 능숙하게하고, 음악적인 감각도 있어 베토벤과 모짜르트를 다 섭렵했다고 소문이나 13살에 명문 최고의 대학을 진학했다고 해서 어른으로 대우하고 어른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환경이 어떻든 간에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어린아이 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처음 열심을 얻어 십계명과 성경의 모든 이론적인 공부들을 많이 했다고 해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성숙에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는 것은 많지만 여전히 삶이나 신앙 생활 속에 ‘스스로의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영적 아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과거 초대 교회 때도 그랬습니다. 유대교에서는 율법을 암기하고 각종 교리를 공부했고,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날마다 확인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을 향해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어린 아이와 같다고 평가된 이유는 삶의 현장 속에서 영적인 성숙의 모습을 스스로 보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라는 말에 주의 해야 합니다. 아이가 다 자라기 전에는 부모가 ‘이것도 해라, 저것도 해라’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아이가 몰라서 만이 아닙니다. 아직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옆에서 잔소리를 함으로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 자라 나이가 30이 되고, 40이 되었는데도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할 지경이라면 반드시 두 가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아직 아이가 나이는 먹었지만 미성숙되었거나. 부모가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성숙’의 진정한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내가 매일 구원 받았는가? 안받았는가? 확인만 하며 살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주어진 말씀으로 세상을 분별하며 살아가는 크리스찬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누구 때문이어서는 안됩니다. 기도를 하거나 봉사를 하고, 영적 생활을 하는 것이 누군가의 도움이나 강요에 의해서 유지 되고 있다면 내가 얼마나 성경을 많이 공부하고, 신앙 생활을 오래 했느냐?하는 것과 관계없이 아직 어린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런 상태에 있다고 하면 내가 아직 어리구나 생각하시고 나의 자라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목숨까지 내어 주시며 날 사랑해 주신 주님을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며 주변의 도움 없이 홀로 말씀에 순종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환경에 관계 없이 내가 아는 말씀에 순종하며 살 수 있을 때 진정한 영적 성숙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을 아는지 딸 아이의 방에 들어가보면 벽에 큼지막한 종이에 깨알 같이 뭔가 적어놓은 종이를 봅니다. 그 종이의 타이틀이 ‘하은이 쑥쑥’입니다. 여기에는 ‘키 크는 음식부터 키 크기 10가지 방법’ 등 수 없이 키 크는데 좋다는 운동 법들이 적혀 있습니다.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그거 써 붙여서 아이가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더 귀여운 것은 그걸 써 놓고는 열심히 따라 합니다. 그런데 확인은 엄마가 해 줍니다. ‘줄넘기 했어? 우유 먹었어 ? 빨리 잠자~’. 제가 생각할 때는 거기 쓰인 내용들이 꼭 키가 크는 방법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내용들입니다. 그걸 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 보면 생활이 되어 그 메모가 없어도, 엄마의 확인이 없이도 자연스레 삶이 되었을 때 딸아이 키와 상관없이 다 자란 믿음직한 딸의 모습을 보게 되리라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누군가의 도움이나 권유 때문에 ‘신앙의 도’를 지켰다면 이제 여러분 스스로 그 도를 행하는 삶의 모습이십니까 ?
우리 사랑의 주님이 ‘이 아비와 같은 심정’으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간절히 영적 성숙을 기대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