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쇼어라인 시장선거에서 시장을 역임해 온 터줏대감 론 한센 의원을 5대 2로 누르고 새로운 시장이 탄생했다. 첫 한인 여시장, 쇼어라인시 한인 최초의 시장, 시 역사상 첫 유색인 시장. '최초'라는 타이틀을 하나 달기도 힘든데 세개나 달고 나타난 인물은 한인 1.5세인 신디 류씨였다.

워싱턴대학(UW) 미생물학 전공, 경영학석사(MBA), 평통의원, 워싱턴주 민주당 아시안 당원회 의장, 쇼어라인 상공회의소장. 보기에는 화려하기만 한 경력이다. 하지만 실제 그의 삶은 여느 이민자의 삶과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조용히 삶을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크리스마스 이브, 부모님의 손을 잡고 시택 공항에 도착한 신디 류씨는 대학 입학 전까지 여름이면 농장에서 블루베리를 따고, 개울에서 수영하던 시골에서 자랐다. 고리타분할만큼 보수적인 부모님과 교회에서 삶과 신앙 교육을 받았다. 마음 한 켠에는 풀리지 않는 반문도 생겨났지만 그래도 한국식 교육을 받았던지라 부모님과 어른들 말씀에 순종했다.

"답답했죠. 교회에서는 영화 보러가면 안된다고 하는데 왜 목사님 아들은 영화관에 가는지, 오빠와 남동생은 연애도 하는데 나는 왜 여자라서 안되는지 이해가 안갔어요. 하지만 그냥 참고, 말 못하고 지냈죠. 어렸을 때는 얼마나 내성적이었는지 어디가서 말 한마디도 못했다니까요. 의사가 되려고 미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왜 의사가 되려고 하느냐?'는 인터뷰 질문에 답을 못해서 경영학석사로 전공을 바꿨어요."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그녀는 10년간 '알을 깨는'시간을 가졌다. 스스로 '사춘기'라고 표현할만큼, 보수적인 분위기 가운데 눌러왔던 자아를 풀어주는 시간이었다. 이후 10년은 '성장기'였다. 가정 생활과 믿음 생활을 통해 성숙해지는 기간이었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는 교회에 다닌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알고보니 날나리 신자였지 뭐에요. 하지만 때가 되니 하나님이 남편에게 길을 여시더군요. 지금은 저보다 더 열심이에요."

남편도, 류 의원도 보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면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잡히니 친정, 시댁, 아이들과의 관계도 올바로 잡혀갔다. '가족'은 류 의원에게 지금까지 가장 힘이 되는 든든한 베이스다. 기반이 신앙으로 다져져 있으니 누구보다도 안정적일 수밖에 없다.

"가족이 가장을 중심으로 뭉치고, 성경적으로 변하더군요. 성숙하지 못했을 때는 내가 하려고 해도 안됐지만, 철이 들고 하나님 안에서 내가 변하니까 주변도 질서 정연해졌죠."

이렇게 안정을 찾고 나니 바깥 세상이 보였다. 남편도 15년간 옆에서 자신을 묵묵히 도왔던 아내를 밀어줬다. 2003년 시의원에 처음 도전했을 때는 197표 차로 아깝게 낙선했다. 주위 격려와 2년간 쌓은 경험으로 2005년 시의원에 당선됐다. 2007년에는 부시장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시장감으로 유력했던 후보가 부시장 선거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시장직에 도전했다.

"정치요? 11학년 때 가장 싫어하는 직업을 꼽으라고 했을 때 주저 없이 '세일즈'와 '정치'를 꼽았죠. 20년 후에 정치인이 되어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쇼어라인 시 오로라 도로를 재건할 때 열렸던 공청회에 우연히 참가하게 된 것이 지금의 류 의원을 만든 발단이었다. 도로 공사 예산 부문과 시청 건축 부문에서 의문을 제기했고,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정치 분야에 눈을 뜨게 됐다. 이것을 계기로 의원직에 도전했고 민주당 활동, 상공회 회장직을 수행하는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올해 시장직에 도전했다.

"저 말고는 경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시장 선거에 출마하게 됐죠. 내가 계획한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때를 맞춰주시고 이렇게 큰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소명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사랑 받는 한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삶을 이끌고 다듬어 오신 은혜를 고백한다.

"어린 시절에는 늘 부정적이었어요. '왜 이민을 왔을까?', '난 왜 차별을 받아야 할까?' 밖으로는 표현 안해도 속으로는 불만이 있었죠. 그리고 자아를 찾지 못해 불안정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하나님 자녀'로서 사는 지금, 제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보너스 같아요."

그는 내부적으로 혼란했던 쇼어라인 시를 정리하는 한편 세금과 토지용도 개발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력할 예정이다.

"쇼어라인 시가 고소도 당하는 등 몇년 동안 혼란을 겪었어요. 주민들도, 시 관계자들도, 외부에서도 쇼어라인 시의 평화를 원합니다. 시의 발전을 위해, 시민을 위해 봉사할꺼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