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매일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고 식사하고 일터로 향하며, 가족과 대화하고 주어진 일을 처리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깊이 생각하며 지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살아 있음은 어느새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의 고비를 넘기거나 큰 시련을 겪고 일어선 사람들은 다르다. 이들은 평범한 아침, 가족의 목소리, 편안한 집과 건강한 몸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걸 잃어버린 뒤에야 그 가치를 아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미국에서 생활하는 아들과 대화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나누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열쇠 하나도 잘 관리해야 하고, 매일의 작은 지출을 절제하며 저축하는 습관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저수지의 수위를 비유로 들었다. 하루하루 바라볼 때는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여도, 꾸준히 물이 모이면 어느 날 수위가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매일의 작은 노력과 인내가 쌓여 시간이 흐른 뒤 의미 있는 결실로 나타난다. 신앙의 여정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이렇게 일상을 관리하고 미래를 준비하면서 정작 자신의 생명과 삶의 의미는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있을까? 성경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살아 있는 것 이상의 생명을 이야기한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자신이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는 자신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다. 이는 인간의 삶이 눈앞의 생존과 물질적 성취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살아 있다는 것은 단순히 숨 쉬고 움직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받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마음을 열며,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고,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하는 삶도 진정한 생명의 모습이다.
물론 이러한 삶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의 문제와 생존을 위한 책임 속에서 때로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잊어버린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할 필요가 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진정으로 옳은 길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녀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 생각하곤 한다. 재산이나 사회적 성취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보다 더 오래 남을 것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웃을 살리며 살아가는 믿음과 삶의 태도가 아닐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는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간구(마태복음 6장 10절)가 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가정과 일상,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오늘도 살아 있다. 그렇다면 단지 하루를 보내고 주어진 삶을 유지하는 데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받은 생명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생명과 소망을 전하며 살아갈 것인가?
진정 살아 있다는 것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생명의 의미를 깨닫고 그 생명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