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부산에서 어머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당초는 90세가 되시는 어머님과 한 주간을 보내며 어머님을 보살피고 싶었다. 보살피려 했는데 보살핌을 당하는 듯해서 시장도 봐 드리고, 어머님 말씀도 듣고, 응석도 부리고, 기도도 받았다. 이런 기회를 다시는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 톨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았다. 내 인생에 가장 알차게 보낸 기간이다.

   오전과 밤은 어머님 말씀을 들으며 어머님 삶의 희노애락을 다시 나누었다. 그리고 오후엔 용호동 오륙도 해맞이 공원을 찾았다. 오륙도 해맞이 공원은 풍경 맛집이다. 탁 트인 바다, 기암절벽 그리고 오륙도가 절경이다. 왼쪽에는 해운대 시가지, 오른쪽에는 태종대와 옛 부산이 보인다.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 자리 잡은 해파랑까페에 매료되어 거의 매일 출근했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해안 절벽에 자리 잡은 해파랑까페에서는 뭘 해도 근사하다. 이 근사한 해파랑까페에서 매일 다섯 시간을 보냈다. 이 다섯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 아름다운 풍경을 눈과 가슴에 가득 담았고, 책을 읽고, 글도 쓰고, 나를 만났다. 곧 해파랑까페가 그리울 것 같고, 아마도 잊지 못할 것 같다. 해파랑까페에서 보낸 시간을 정리해 본다.

   첫째로 해파랑까페에서 책을 읽었다. 존 비비어의 <존중>과 고(故)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집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었다. 장교수의 ‘못 줄 이유’라는 글에서 시선이 멈췄다. 미사 시간에 신부로부터 “무엇이든 옆 사람과 함께 나누라”는 갑작스러운 요청을 받는다. 가방과 주머니를 다급히 뒤지던 작가는 손에 잡히는 스카프나 귀걸이 등은 아까워서 주지 못했고, 겨우 찾아낸 사탕 한 알을 옆에 앉으신 할머니께 드리고 안도했단다.

   ‘못줄 이유’를 찾으며 허둥대는 작가의 모습에 내가 보인다. 나누려 하면 수많은 ‘못줄 이유’가 떠오른다. 내 안에 가득한 인색함과 탐욕이 오륙도 앞바다처럼 출렁거린다. 나눠야 할 기회가 오면 천재적으로 ‘못줄 이유’를 찾았던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좀 더 나눌 기회를 찾기로 다짐했다. 해파랑까페에서 보낸 시간의 첫 열매는 좀 더 나누는 삶을 결심한 것이다.

   둘째로 해파랑까페에서 글을 썼다. 매주 숙제하듯 신문사에 보낼 글들을 쓴다. 해파랑에서 글을 쓰며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처럼 곧 잊혀 질 글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또 누군가에게는 단단한 디딤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다듬었다. 멋지고 근사한 글이 되지 못해도 절망에 신음하는 사람에게 희망의 속삭임이 되는 글을 쓰기로 맘먹었다. 비판과 비난의 글이 아닌 영혼을 포근히 감싸는 글만 쓰기로 굳게 다짐했다.

   셋째로 해파랑까페에서 ‘나’를 만났다. 나를 객관적으로 본 시간이었다. 책에 비친 나, 가을에 비친 나를 보았다. 위에서 나를 보고, 아래에서 나를 보았다. 과거 시선으로 나를 보고 미래 시점에서 나를 보았다. 후회와 아쉬움에 몸서리치는 ‘어제의 나’와 새로움을 꿈꾸는 ‘내일의 나’를 만나며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했다. 요컨대 아름답게 늙기를 다짐했다.

   마지막 날 해파랑까페를 나서며 칼 윌슨 베이커(Karle Wilson Baker)의 명시 “사랑스럽게 나이 들게 하소서(Let Me Grow Lovely)”를 읊조렸다. ‘사랑스럽게 나이 들게 하소서!/ 수많은 멋진 것이 그러하듯이/ 레이스와 상아(象牙)와 황금 그리고 비단도/ 꼭 새것만이 좋은 건 아닙니다.// 오래된 나무에 치유력이 있고/ 오래된 거리에 품격이 있듯이/ 저도 나이 들어감에 따라/ 사랑스럽게 나이 들게 하소서!’ 사랑스럽게 늙어 가고 싶다.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대표).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