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 말론 드 블라시오 작가.
말론 드 블라시오 작가.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말론 드 블라시오 작가의 기고글인 '의심이 찾아올 때 신앙을 지키고 성장하는 3가지 방법'(3 ways to thrive in your Christian faith when doubt creeps in)를 9월 30일 게재했다.  

블라시오 작가는 문화 옹호자, 기독교 작가, 그리고 '문화를 분별하다'(Discerning Culture)의 저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여정에서 신자는 필연적으로 유혹과 지적인 도전, 때로는 의심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영적 갈등은 주 예수님과의 풍성한 관계를 흔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흔들릴 때에도 주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3)는 말씀처럼 말이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든 참된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따라서 필자는 신자가 풍성하고 활력 있는 믿음을 지켜가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요소를 나누고자 한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요소는 특히 중요하다. 오늘날의 문화 속에서는 온라인을 통해 끊임없이 날아드는 수많은 '불화살'을 분별하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울의 권면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엡 6:16).

1. 의심과 불신앙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한다 

온라인상에는 기독교인이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고 결국 버리도록 유도하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존재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독교 신앙에 대해 질문하거나 의심을 경험하는 것과, 믿음을 거부하는 불신앙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비판 가운데 하나가 "당신이 기독교인인 이유는 단지 기독교 문화권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말은 기독교 신앙이 진리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성장 환경에 의해 조건화된 결과일 뿐이라고 암시한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신자에게는 이러한 주장이 믿음을 흔드는 불화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전형적인 '발생학적 오류(genetic fallacy)'에 빠질 수 있다. 어떤 믿음을 언제, 어디서, 어떤 환경에서 갖게 되었는가는 그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어떤 주장의 진실성은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 배경이 아니라 그 주장 자체의 근거와 타당성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수학을 기독교 가정에서 배웠다고 해서 그가 배운 수학 공식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기독교 문화권에서 자랐다는 사실만으로 기독교의 진리 주장이 거짓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의심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신앙의 내용과 씨름하고 질문하는 과정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 사회과학자가 표현했듯, 신앙과 교리를 놓고 씨름하며 질문하고 탐구하는 과정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사랑하는 길로 나아가는 일부가 될 수 있으며, 때로는 하나님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하시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신자는 믿음의 중심을 붙드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의심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의심을 성실하게 다루고 진리를 탐구한다면, 오히려 이전보다 더 깊고 강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필자는 그리스도께 속한 참된 신자는 궁극적으로 그분의 손에서 버려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는다. 예수님은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또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7~28)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의심을 경험한다는 사실 자체를 곧 불신앙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심은 오히려 신앙이 성숙해 가는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

2. 예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보배로운 분인지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에게 예수님은 이전에 알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 된다. 영적인 눈이 열리고 "어둠에서 빛으로"(행 26:18) 옮겨지는 경험은 그 사람의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그리스도를 믿기 전과 믿은 이후의 삶 사이에는 단순한 지적 동의 이상의 변화가 존재한다. 예수님의 은혜와 용서, 그분과의 관계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에게 그리스도는 단순한 종교적 인물이나 사상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신자에게 너무도 분명하고 소중한 이 사실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고전 2:14)라고 기록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발견한 가치와 영광을 회의론자나 비신자가 똑같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다. 선량하고 친절한 가족이나 친구라 할지라도, 거듭난 신자가 경험하는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4~15)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의 세속 문화 속에서도 기독교 신앙에 대한 비판과 냉소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는 그러한 반응만을 기준으로 자신의 믿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누구신지를 다시 기억해야 한다.

신앙이 흔들릴 때는 논쟁에서 이기는 것만큼이나 그리스도의 가치를 다시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다.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고, 어떤 은혜를 베푸셨으며, 그분 안에서 어떤 삶을 얻었는지를 기억할 때 믿음은 다시 중심을 찾을 수 있다.

3. 신앙에는 인내가 반드시 필요하다 

히브리서 11장은 흔히 '믿음의 전당'이라고 불린다. 이 장에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어떻게 인내했는지가 기록돼 있다.

그들은 언제나 쉬운 환경에서 믿음을 지킨 것이 아니다. 약속의 성취를 즉시 보지 못한 사람도 있었고, 고난과 거절, 박해와 불확실성을 견뎌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눈앞의 상황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을 제시한 뒤 독자들에게도 같은 인내를 요청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면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1~2).

신앙생활 가운데 예수님이 멀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말씀을 읽어도 아무런 감동이 없으며,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에도 먼저 돌아볼 것은 하나님이 실제로 멀어진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마음과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닌지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약 4:8)고 권면한다.

필자 역시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 시련과 어려움을 겪으며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인내해야 했다. 그리고 자기 성찰과 말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어려움을 견딜 힘과 지혜를 공급받았다고 고백할 수 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도 각자의 삶 속에서 비슷한 간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내는 아무 감정도 없이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계속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고, 말씀으로 돌아가고, 기도하며, 공동체 안에서 도움을 받고,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붙드는 것이다.

의심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 

풍성하고 활력 있는 기독교 신앙은 한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이루셨는지를 계속 알아가고,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그 은혜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점점 깊이 깨닫는 과정이다.

신앙생활에는 질문이 생길 수 있고 의심이 찾아올 수도 있다. 세상의 목소리가 믿음을 흔들 때도 있고, 예수님이 멀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의심과 불신앙을 구별하고, 그리스도가 얼마나 보배로운 분인지 기억하며, 믿음의 경주에서 인내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강한가보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분이 얼마나 신실하신가 하는 사실이다.

우리가 흔들릴 때에도 그리스도는 흔들리지 않으신다. 우리가 질문할 때에도 그분은 진리이시며, 우리가 지칠 때에도 그분은 여전히 붙들고 계신다. 그래서 신앙의 핵심은 의심이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데 있지 않다. 의심이 찾아올 때에도 다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을 붙들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