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깊어 가는 길목에 서서, 이 계절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 하나를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가슴을 채우는 단어는 단연 ‘결실’입니다. 일 년 내내 들녘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정성을 쏟아부은 농부들에게 가을은 비로소 한 해의 노고에 대한 성적표를 받아 드는 계절입니다. 자연의 시간에 맞춰 조용히 다가오는 이 수확의 계절에, 어떠한 결실이 맺혔든 서로의 풍요로운 마음이 더해져 온 누리에 기쁜 소식이 가득히 들려오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돌이켜보면 봄날의 시작은 늘 조용한 기다림이었습니다. 여린 씨앗을 흙 속에 묻고, 여름 내내 자식이나 아기 다루듯 정성스레 보살피며, 거친 태풍과 아득한 장마를 견뎌낸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풍성하게 자라난 농촌의 평화로운 논과 밭은, 그저 저절로 이루어진 풍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땀 흘린 이들의 숭고한 열정이 써 내려간 눈물겨운 성적표이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신실한 과정의 열매입니다.
장마와 폭염 속에서 견뎌낸 그 고단함을 지나 비로소 귀한 선물을 받는 기쁨은, 오직 밭을 일군 농부들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리이자 거룩한 보상일 것입니다. 성경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 126:5)”라고 말씀합니다. 수고와 열정이 없는 삶, 아무런 걱정도 책임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달려왔다면 과연 그 어떤 삶에서 감격스러운 결실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땀을 흘려본 사람만이 결실의 가치를 알고, 고난을 버텨낸 사람만이 수확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물 속에 새겨두신 변함없는 삶의 이치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삶은 언제나 우리가 심은 열정과 기도, 그리고 땀방울의 궤적을 거짓 없이 반영합니다.
우리의 인생길 역시 이 자연의 순리와 너무나 꼭 닮아 있습니다. 태어나 자라며 맞닥뜨리는 희로애락의 수많은 굽이들을 지나다 보면, 어느덧 70이라는 인생의 중반 고개를 넘어서게 됩니다. 삶의 계절로 치자면, 마침내 지혜롭고 깊은 가을을 만난 것입니다. 70이라는 언덕 위에 올라 지나온 날들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그것은 마치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들녘에서, 알차게 익어 고개 숙인 벼 이삭들을 바라보는 마음과도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삶의 변화 속에서도 쉬지 않고 달려온 지난 시간들이 아련하게 스쳐 지나갑니다. 치열했던 지난날의 비바람과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시련의 순간들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의 장마철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더욱 단단하게 기르셨고, 마침내 오늘이라는 감사의 수확을 얻게 하셨습니다. 거친 풍파를 이겨내고 맞아이재한 이 가을은,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친히 베풀어주신 은혜의 결정체입니다.
이제 쉼 없이 달려온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삶을 돌아보며 가을이 주는 풍요로움을 마음껏 누려봅니다. 우리가 걸어온 피와 땀의 길 위에 풍성한 결실을 맺어주신 창조주의 깊은 뜻을 묵상해 봅니다. 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지나온 모든 세월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더욱 겸손하고 그윽한 마음으로 이 가을의 거룩한 축복을 가슴 깊이 품어 안아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