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스코틀랜드, 프랑스에서 의료적 조력자살 합법화가 계속 무산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노동당 킴 리드비터(Kim Leadbeater) 의원이 제안한 웨스트민스터 법안이 최종 표결에 이르지 못해 사실상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조력자살 지지자들은 상원에서 절차적 지연 전술이 동원돼 법안이 좌초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생명 수호 단체들은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조력자살 지지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당 플로렌스 에샬로미(Florence Eshalomi) 의원은 "왕립 대학, 전문 단체, 내각 장관 가운데 단 한 곳도 이 법안의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상원의원들이 전문가들의 우려를 무시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스코틀랜드에서도 별도의 유사 법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의료 전문가에 대한 양심 보호 조항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의원들이 표결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닐 그레이(Neil Gray) 보건부 장관은 "양심 보호 문제는 분권 사안이 아니므로 스코틀랜드 의회가 입법할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결국 법안이 제정되더라도 최종 결정권은 영국 정부에 있다는 설명이다.

케어낫킬링(Care Not Killing)의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 대표는 "양심 보호 조항이 삭제된 것은 입법 권한이 없기 때문"이라며 "이는 고용법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의원들은 단순히 백지 수표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에 투표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프랑스에서는 상원의원들이 의료적 조력자살을 공중보건법에 포함시키는 데 찬성했으나, 안락사와 조력자살을 직접 허용하는 법안 내용은 거부했다. 대신 "모든 사람은 고통과 고난으로부터 가능한 최상의 구제를 받을 권리가 있다"와 "죽음을 의도한 자발적 개입 없이도 죽을 때까지 이 권리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유럽 전역에서 조력자살을 둘러싼 논쟁이 얼마나 첨예한지를 보여준다. 지지자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며, 불치병 환자들이 고통 없이 삶을 마무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자들은 생명 보호의 원칙과 제도적 안전장치 부족을 지적하며, 제도가 도입될 경우 사회적 약자와 노인, 장애인들이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는 의료 전문가들의 양심권 보장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의료진이 법적·윤리적 갈등 속에서 강제로 조력자살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상원이 '죽음을 의도하지 않는 최선의 완화적 치료'라는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안락사와 조력자살의 제도화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