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 신성욱 교수

[1] 원래 성경은 구약이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신약이 ‘헬라어’ 이 세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다. 때문에 번역을 하지 않으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번역은 반역’이란 말이 있듯이, 한 나라의 언어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정확하게 번역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원어 성경을 이해할 실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2] 요나서와 사사기서에 나오는 요나 선지자와 사사 삼손의 삶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불순종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흡사함을 알려주는 히브리어 동사가 하나 있다. 바로 ‘יָרַד’(yarad)란 단어이다. 우리말로는 ‘내려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단순한 ‘이동 동사’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성을 강조하는 핵심 신학 장치’이다.

[3] 요나서는 ‘내려감’(יָרַד)’이라는 동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요나의 영적·신학적 추락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자.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여 욥바로 '내려갔다'(וַיֵּרֶד יָפוֹ)”(욘 1:3a).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이탈하는 첫 번째 불순종의 내려감이다.

[4] “…배를 만나 … 값을 내고 그 배에 '내려가'(וַיֵּרֶד בָּהּ)”(욘 1:3b).
‘하나님의 땅’에서 ‘이방의 배’로 내려감이다. 사명의 땅에서 도피의 장소로 도망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요나는 배 밑창에 '내려가'(יָרַד אֶל־יַרְכְּתֵי הַסְּפִינָה) 누워 깊이 잠들었더라”(욘 1:5).
하나님이 보내신 폭풍 가운데서 ‘완전히 피해버림의 상태’로 들어감이다.

[5]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יָרדְתִּי לְקִצְבֵי הָרִים)”(욘 2:7).
스올의 영역에 근접하는 상황까지 이르름이다.
요나는 한 번 불순종했을 뿐인데, 성경은 네 번이나 ‘내려갔다’고 기록한다. 불순종은 언제나 우리를 더 낮은 곳으로 계속 데려간다. 하나님을 피하면,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계속 내려가게 됨을 알아야 한다.

[6] 삼손 역시 사사로 부름 받았지만, 하나님이 부르신 거룩한 땅에서 타락의 공간을 상징하는 이방 땅으로 자꾸만 이동한다.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삼손이 딤나로 '내려가서'(וַיֵּרֶד שִׁמְשׁוֹן תִּמְנָתָה) 거기서 블레셋 여인을 보고”(삿 14:1).
언약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기 시작함이다.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로 '내려가다가'…”(삿 14:5).
영적으로 점점 하강하기 시작함을 보여준다.

[7] “삼손이 가사로 '내려가서'(וַיֵּרֶד שִׁמְשׁוֹן עַזָּתָה) 거기서 창녀를 보고”(삿 16:1).
음행이라는 습관적 타락의 길로 빠져듦을 알려준다.
그 결과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끌고 가사로 내려가 눈을 뽑고 맷돌을 돌리게 하는 수치를 당하고 만다.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 내려갔고, 삼손은 정욕을 따라 내려갔다.

[8] 동기는 달랐지만 방향은 같았다. 둘 다 ‘하나님으로부터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요나는 하나님께서 물고기로 그를 육지에 토하게 하셔서 다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고, 삼손은 마지막 순간 하나님께 힘을 얻어 블레셋의 큰 집을 무너뜨리고 원수들과 함께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히브리어 ‘יָרַד’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사명자의 영적 하강’을 보여주는 단어이다.

[9] 요나와 삼손의 삶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자기 욕망을 따를 때 인생이 어떻게 점점 내려가는지(went down)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두 사람이 완전히 버림을 당하지 않고 다시 사명을 감당할 기회를 얻음도 알려준다. 이제 우리는 두 사람과 달리, 찬송가 가사처럼 처음부터 “독수리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의 길로 올라가기만(go up) 하는 사명자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