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 신성욱 교수

[1] 내게는 그 무엇보다 기쁘고 행복한 일이 몇 가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말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동물과 식물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제하는 것도 좋아한다. TV를 보더라도 해외 기행이나 동물의 왕국이나 식물 나라 등에 관한 채널 보기를 즐겨한다. 나는 책 읽기도 매우 좋아한다. 좋은 책을 손에 넣으면 그 속에 푹 빠져들어 크게 즐기는 편이다.

[2] 물론 글쓰기도 빼놓을 수 없는 내 취미 중 하나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가 않다. 내 속에 있는 모든 혼을 끄집어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누구든 마찬가지이지만, 나는 자식들도 무지 좋아한다. 넷 중 셋이 미국에 떨어져 있어서 자주 볼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 너무도 소중한 존재들이다.
최근엔 첫 손주가 태어나서 벌써 넉 달이 지났다.

[3] 그간 막내를 가장 좋아했는데, 이젠 손자가 더 눈에 삼삼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중에도 내 관심을 최고로 사로잡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빠져드는 것'이다. 성경과 설교를 전공한 학자로서 현재 한국 강단의 문제점을 점검해 볼 때 심각한 현상이 하나 있다. 설교자들의 설교 내용이 점점 '성경 본문의 자양분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4] 그것은 청중들로 인해 야기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원초적으로는 설교자 자신들로 인해 빚어진 불행이라 할 수 있다. 솔직히 요즘 청중들은 성경 본문에 별로 관심이 없다. 설교가 재미있고 잘 들리고, 자신의 고민이나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터치가 있으면 사람들이 몰린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설교자들에게 성도들이 몰리고 그런 이들이 유명한 설교자로 알려져 온 게 사실이다.

[5]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설교의 내용이 성경 본문에 충실하다 해도 잘 들려야 청중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다. 따분하고 지루하게 전달되는 설교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하지만 청중들을 이렇게 만든 것에는 근본적으로 설교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재미있는 내용이나 감동적인 예화가 나오는 설교'보다는 '철저한 본문 중심의 설교'를 좋아하는 이들이 여전히 전재한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존 맥아더(John MacArthur) 의 설교를 보라.

[6] 그의 설교에는 '유머'나 '예화'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도덕적 훈계'나 '윤리'보다는 '구원론'과 '복음'에 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꿈, 비전, 성공'과 같은 '자기 계발적 언급'도 찾아보기 힘들다. 감정 자극은 없고, 본문 설명이 매우 길고 치밀하게 전개되는 '성경 강의와 설교와 신학 강연이 복합된 형태'라 할 수 있다.
맥아더는 ‘얕은 해석’(Shallow Exegesis)을 매우 강하게 비판한다.

[7] 꽤 지겹고 따분하다 생각될 만한 설교지만, 그의 설교를 최고의 설교로 생각하며 크게 은혜받아 온 이들이 이 땅에 적지 않다. 어떤 차이인가? 청중들을 길들이기 나름이란 말이다. 설교자들이 처음부터 자신의 성도들에게 하나님 말씀의 액기스를 짜내어 먹이는 작업에 충실했다면, 그들 대다수는 맥아더의 청중들과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본문을 가지고 치열하게 파헤치며 설교를 준비하는 방법을 신학교 시절 배우질 못했다.

[8] 물론 그렇게 가르쳐주는 스승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얕은 해석’(Shallow Exegesis)이 난무하는 설교와 강단이 되고 만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최근 대형교회의 담임으로 청빙 되어 온 후배 설교자 중에는 전달도 탁월하지만, 본문에 관한 실력도 상당히 갖추었다고 볼 수 있는 '균형 잡힌 설교자들'이 눈에 띄는 걸 볼 때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9] 66권의 성경 속에는 아직도 발견되지 못한 채 설교자들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보물들이 즐비하다.
나는 '성경 본문 파헤치기'를 최고로 좋아하고 즐기는 '행복한 성경 탐험가'이다.
그간 창세기 4장 1~6절까지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의 제물’ 내용을 깊이 파헤치고 또 파헤치면서 남들이 캐내지 못한 값진 보물들을 계속해서 확보하는 기쁨에 젖어왔다.

[10] 오늘 나는 또 다시 그 밭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동안 전혀 발견해 내지 못한 새로운 보물을 하나 더 발견했다. 예상 밖의 큰 수확이다. 그 순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옆에 있던 아내가 왜 그러냐고 물을 정도로 큰 탄성을 내지른 것이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이는 알 수가 없는 기쁨과 행복이다. 나는 이런 행복을 일주일에 여러 차례 매번 맛보고 체험하고 있다.

[11] 그걸 경험해 보길 원하는 이가 있다면 성경을 읽고 대할 때 반드시 궁금증을 가지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게 바로 ‘차별화된 설교의 콘텐츠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비결’이다. '차별화된 질문'이 '차별화된 성경 해석'을 낳고 '차별화된 설교'를 낳는다.
고마운 것은 요즘 AI가 양질의 질문에 유익한 답을 상당 부분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 참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12] ‘땅의 보물’을 얻는 것도 복된 일이다. 하지만 ‘하늘의 보물’인 성경 말씀은 그것과는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땅의 보물은 소유자 혼자서만 누릴 수 있지만, 성경 말씀은 혼자서만 누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다 나누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그 보물들이 즐비하게 감추어진 성경 말씀 속을 탐험해 보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인은 물론이요, 설교자라면 누구나가 다 이 말씀 탐험에 몰두해야 함을 명심하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