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성시화운동본부 이사장으로 수년간 섬겨온 최문환 장로가 지난 1월 6일, 2년간의 투병 끝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했다. 향년 93세다.

고인은 생전 “나는 원래 금수저였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시던 분이셨다”며 젊은 시절을 회상하곤 했다. 대학 재학 시절 형광등 사업을 시작으로 봉제공장과 인쇄공장까지 운영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젊은 나이에 상당한 부를 이루었다. 그러나 인쇄공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을 잃는 중대한 시련을 겪게 된다.

최 장로는 이 사건을 자신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고백해 왔다. 그는 “그 사고가 없었다면 교만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며, 그 일을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후 그의 삶은 성공 중심의 인생에서 나눔과 섬김의 인생으로 방향을 바꾸게 됐다.

고인은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남가주 교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고, 한인동포재단, 거리선교회, 남가주장로협의회 등 여러 단체에서 두루 섬기며 헌신했다. 또한 월드미션대학교에서는 송정명 목사가 총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학교 사역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특히 미주성시화운동본부에서는 제 2대 이사장으로 섬기며 조직의 성장과 안정을 이끌었고, 이후에도 명예이사장으로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2009년부터는 한인 2세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고국체험학교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또한 다년간 진행된 ‘사랑의 쌀 나눔’ 운동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돌보았으며, 지역 교계가 연합하는 조찬기도회 등을 이끌며 미주 전역의 성시화운동(Holy City Movement)를 위해 헌신해 왔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LA 한인타운의 변화를 지켜본 교계 원로로서, 최 장로는 생전 “금수저보다는 나누는 삶이 더 귀하다”고 강조하며 이를 삶으로 실천한 인물로 기억된다. 지병이 악화되기 전까지 십 수년간 열정적으로 사역을 이어갔고, 이후에도 교계를 향한 관심과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최문환 장로는 1933년 6월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중·고등학교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56년 졸업했다. 같은 해 장영은 권사와 결혼해 2남 2녀를 두었다. 1978년 도미한 이후에도 인쇄 사업 등을 통해 활발히 활동하며, 평신도로서 목회자들의 뒤에서 묵묵히 섬기며 남가주 교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고 최문환 장로의 천국환송예배는 1월 26일 정오, Forest Lawn Hollywood에서 거행되며, 당일 말씀은 송정명 목사가 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