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좀 전에 한 학생이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냈다.
“교수님 샬롬이예요. 요즘 박** 목사님 관련해서 40억 이야기들이 많이 들리더라고요. 예전에 제가 몇 년 동안 있었던 성도 수가 1,000명 가까이 되었던 교회가 생각났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소천하신 후에 위임 목사님으로 오신 분이신데 성도들이 많이 떠나고 250명 정도만 남은 상황에서 교회와 잘 맞지 않아 결국 사임하시게 되었습니다.
[2] 그 과정에서 교회에서 지원해 드렸던 보험금과 거주하시던 아파트 전세금 그리고 현금까지 몇억을 요구하셨어요. 교회는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결국 목사님 요구하신 대로 드리고 보내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세한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교회가 박 목사님의 요청을 존중하며 지혜롭게 잘 감당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3] 교수님께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미 잘 알고 계신 상황일 것 같아서 여쭤보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문자를 받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나 역시 완전하지 않은 사람인데 누굴 평가하고 비난할 수 있겠나라는 마음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의 기회를 통해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몇 자 적어본다.
[4] 최근 현대 기독교 문학을 대표하는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P 씨의 일탈과 우리나라 명설교가 중 한 분으로 영향을 많이 끼쳤던 P 목사의 목회 분립 관련 논란으로 인해 교회와 기독교인, 그리고 목회자들이 다시 한번 지탄의 대상이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오고 말았다.
우선 누구든 이 두 사람을 정죄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 모두가 다 허물 많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5] 하지만 세상에 우리가 존경할 만한 모범적인 분들도 있기에 이런 기회를 활용해서 그들의 실례를 소개함이 좋다고 본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 목사 한 사람이 있다. 설교도 아주 탁월하지만, 인격은 그 몇 배나 훌륭한 목회자이다. 교회를 개척해서 11년 동안 수천 명 교회로 부흥시켰다. 하나님의 콜링이 있어서 교회를 사임했는데, 당회에서 후한 은퇴비를 지급하려고 하자 기어코 거절하고 교회를 떠났다.
[6] 장로들이 이사 비용이라도 받아달라고 눈물로 간청했으나 끝내 거부당했다. 세상에 이런 모범적인 목회자도 소수 존재하고 있음에 소망을 가져야 한다. 물론 모든 목회자들이 다 그처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 사역에 최선을 다하고 은퇴하는 목회자들도 은퇴 후 개인과 가족 생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은퇴비 받는 것을 비난할 순 없다.
P 목사가 목회 분립을 위해 거액을 요구한 것에 대해 비난하는 이들이 많다.
[7] 며칠 전, 논란 중인 그 일에 관해서 P 목사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글을 쓴 한 목회자의 페북 내용을 읽어본 적이 있다. 몇십억이라고 하니 엄청나게 커 보이지만, 서울 지역의 웬만한 곳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되는 액수이므로, 그렇게 큰 교회로 성장시킨 목사님과 아들 목사의 목회 분립을 위해서 그리 심하게 비난할 일은 아니란 얘기였다. 사실 서울에서 개척하려면 나름 많은 금액은 아니기 때문에 일면 이해가 가는 점도 있어 보였다.
[8] 하지만 그간 명설교와 명 저서들을 통해 많은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온 지도자에게서 볼 모습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선 크게 반대할 이가 없으리라 본다.
“Uneasy lies the head that wears a crown.”
“왕관을 쓰고 있는 머리는 편히 눕지 못한다”라는 말이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헨리 4세』(Henry IV) 2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9] 우리말에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
다수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고 존경과 찬사를 받고 있는 이라면 자신이 전한 말이나 쓴 글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럴 자격이 없는 자라면 애초에 대중 앞에 서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한 마디나 행동 하나가 많은 이들에게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기억해야 한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왕관을 써온 자라면 더욱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단 말이다.
[10] 그간 두 사람의 저서를 통해 은혜와 감동을 받았던 이들 중 두 사람의 책을 불 싸지르고 싶다며 분노하는 이들이 있음을 본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아무리 문제 있는 사람이 내뱉은 말이나 쓴 글이라 하더라도 그 말과 글 자체가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면 애써 배척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메신저가 무너지면, 메시지는 설 자리를 잃는다”라는 말은 절대 무시되지 않는다.
[11] ‘진리는 입을 통해 오지만, 설득은 삶을 통해 온다’라는 말도 있다. 사람들은 메시지를 듣기 전에 그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을 먼저 읽는 법이다. 메신저가 보이는 삶의 무게는 메시지 무게만큼이나 무겁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의 문제로 그가 전하는 소중한 메시지가 배척당한다면 그보다 더 큰 비극은 없을 것이다. 이번 일을 통해,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은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기억하면 좋겠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