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역사상 가장 많은 기도를 응답받은 사람’, ‘고아들의 아버지’로 유명한 조지 뮬러(George Müller)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점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그를 ‘5만 번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의 설교원고 속에서 그가 ‘수십 만 번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임을 확인한 바 있다. 다음으로, 영국 브리스톨에서 고아원 사역을 한 이유로 그를 영국인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2] 하지만 그의 국적은 ‘독일’이다.
또 한 가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뮬러가 주로 기도를 많이 한 소위 말하는 영파일뿐 학문적으로 깊이 연구하는 학구파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조지 뮬러는 기도만 열심히 한 사람이 아니라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을 연구함에도 최대한 열정을 기울인 사람이다.
[3] 조지 뮬러의 신앙을 단순한 ‘기적의 신앙’이나 ‘응답받는 기도의 표본’으로 축소하려는 시선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는 결코 감정적 신앙이나 막연한 신비주의 위에 서 있던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지적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 이해 위에 기도를 쌓아 올린 철저한 성경 중심의 신앙인이었다.
사람들에게 조지 뮬러는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4] 그는 흔히 “사람에게 한 번도 후원 요청을 하지 않고, 오직 기도로만 고아원을 운영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만을 강조할 경우, 그의 신앙은 마치 초자연적 체험이나 특별한 은사에서 비롯된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 실제의 조지 뮬러는 매우 치밀하고 절제된 신앙인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성경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고, 그 확신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 연구로 이어졌다.
[5] 조지 뮬러의 기도는 즉흥적이거나 막연한 소망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의 기도는 말씀 위에 세워진 기도였다. 그가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 연구에 몰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번역된 성경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처음 주신 언어 속에 담긴 의미와 뉘앙스를 직접 붙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성경을 읽는 목적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정확히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문 연구는 그에게 학문적 취미가 아니라 경건의 한 방식이었다.
[6] 특히 시편과 구약 본문에 대한 그의 관심은 깊었다. 히브리어의 동사 시제, 반복되는 어근, 시적 평행법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을 더 분명히 붙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붙든 말씀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약속에 근거한 담대한 간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무엇을 “요청”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먼저 확인했다.
[7] 그에게 성경 원문 연구는 학문적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는 설교를 더 인상적으로 만들기 위해 원어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개인 경건의 시간에 성경을 펼쳐 들고, 번역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의도를 더 정확히 붙잡기 위해 히브리어 본문을 탐구했다. 특히 구약의 시편과 약속의 말씀들 속에서, 그는 단어 하나하나가 지닌 무게를 깊이 묵상하는 사람이었다.
[8] ‘히브리어 동사의 시제’, ‘강조를 위한 반복’, ‘시적 평행법’은 그에게 단순한 문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통로였다.
조지 뮬러의 기도는 이러한 말씀 이해에서 출발했다. 그는 기도하기 전에 먼저 성경을 읽었고, 성경을 읽을 때는 반드시 순종을 전제했다. 그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는 기도는 쉽게 감정으로 흐른다”고 믿었다.
[9] 그래서 그의 기도는 추상적이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무엇을 약속하셨는지를 확인했다. 그의 기도 일기에는 감탄이나 탄식보다, 말씀에 근거한 논리와 신뢰가 더 자주 등장한다. 이 점에서 조지 뮬러는 기도와 말씀, 영성과 지성을 결코 분리하지 않았다. 그는 성경 연구 없는 기도는 방향을 잃기 쉽고, 기도 없는 성경 연구는 교만해지기 쉽다는 사실을 몸소 알고 있었다.
[10] 그래서 그는 평생 이 두 가지를 함께 붙들었다. 깊은 연구는 그의 기도를 정확하게 만들었고, 지속적인 기도는 그의 연구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그의 고아원 사역 역시 이러한 균형 위에 서 있었다. 수천 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단순한 믿음의 모험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공급에 대한 약속을 성경에서 분명히 확인했고, 그 약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원문까지 살피며 확신했다.
[11] 그런 다음 그 확신을 가지고 기도했다. 그래서 음식이 떨어지기 직전에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고, 응답이 지연될 때에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의 평안은 성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주목할 점은, 그가 이러한 원문 연구와 말씀 묵상을 결코 과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을 학자로 포장하지 않았고, 신학적 권위를 주장하지도 않았다.
[12] 오히려 그는 말씀이 자신을 판단하게 했고, 성경이 자신의 삶을 교정하도록 허락했다. 히브리어 성경은 그에게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순종의 기준이었다.
결국 조지 뮬러의 위대함은 ‘기도를 많이 했다’는 데 있지 않다. 그의 위대함은 ‘말씀을 정확히 알기 위해 끝까지 파고들었고’, ‘그 말씀을 붙들고 무릎으로 내려갔다’는 데 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는 신앙인인 동시에, 본문을 파헤치는 신앙인이었다.
[13] 이런 조지 뮬러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도전한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기도하는가, 아니면 막연한 기대 속에서 신앙을 소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은, 오늘 우리가 성경 앞에 얼마나 진지하게 서 있는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2026년은 어느 해보다 조지 뮬러처럼 정확한 진리의 말씀 앞에 바로 서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