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단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단어 속에 깊은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제가 가슴에 품은 단어는 “수정(守靜)”입니다. 수정은 ‘지킬’ 수(守)와 ‘고요할’ 정(靜)의 합성어입니다. 수정이란 고요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정을 지속적으로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혼란스럽고 흔들리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 찬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불안과 초조와 염려와 두려움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고요입니다. 마음의 고요는 마음의 평강을 의미합니다.
우리 교회는 뿌리 깊은 영성 수련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뿌리 깊은 영성 수련회를 갖게 된 이유는, 마음의 고요함을 지키는 지혜를 배우기 위함입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나무에서 중요한 것은 뿌리입니다. 뿌리가 건강하면 나무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가장 무서운 병은 뿌리 병입니다. 나무의 뿌리에 문제가 생기면 서서히 나무가 말라 죽습니다.
차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엔진입니다. 비행기에서도 정말 중요한 것은 엔진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중고차를 구입해서 탄 적이 있습니다. 겉모양이 너무 좋아 구입했는데 문제가 참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보이지 않는 엔진과 트랜스미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외모를 가꾸는 것을 폄하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외모를 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외모를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날 때는 중심을 잘 가꾸어 보여드려야 합니다. 반면에 사람들을 만날 때는 외모를 잘 가꾸어야 합니다. 가능한 용모를 단정하게 하고, 가능한 옷도 잘 입어야 합니다. 특별히 한국 사람은 옷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의식주(衣食住)라는 표현을 씁니다. 의식주의 순서를 보십시오. 입는 것이 제일 먼저입니다. 우리 민족의 문화 중의 하나는 선비문화입니다. 배가 고파도 옷은 단정하게 입어야 합니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문화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날 때 먼저 그 옷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옷은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의사 선생님들은 하얀 가운을 입습니다. 판사와 검사는 법정에서 법관으로서 품격을 드러내는 옷을 입습니다. 성경에도 옷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지어 주신 것이 가죽옷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우리는 예수님을 믿은 후에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송의 옷을 입혀 주심으로 찬송케 하십니다(사 61:3).
왜 하나님이 외모보다 중심을 보시는 것일까요? 중심은 마음의 생각과 태도입니다. 성경은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 지혜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우리는 소중한 것을 지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지키라고 명하신 것은 마음이 소중한 까닭입니다. 생명의 샘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여기서부터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잠 4:23, 현대인의 성경).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마음의 고요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의 고요가 왜 중요할까요?
마음의 고요는 영혼의 상처를 회복합니다. 마음의 상처는 고요 중에 치유됩니다. 고요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우리의 상처를 내어 드릴 때 상처는 치유됩니다. 마음의 고요는 지혜를 불러옵니다. 마음이 고요할 때 하늘의 지혜가 임합니다. 마치 호수가 잔잔할 때 그 위에 하늘이 비치는 것과 같습니다. 호수가 맑으면 곁에 있는 나무를 품고,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품습니다. 밤에는 달과 별을 품습니다. 마음이 고요할 때 잘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고요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고요할 때 마음은 맑아지고 밝아집니다. 그때 우리는 지혜롭고 총명하고 명철함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마음이 고요할 때 언어도 고요해집니다. 마음의 고요는 마음을 온유하게 만듭니다. 마음의 고요 속에 마음은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온유한 마음은 옥토와 같은 마음입니다. 옥토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질 때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마음이 고요할 때 좋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화가 난 마음은 요동치는 마음입니다. 화가 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는 격렬하고, 폭력적입니다. 마음의 고요를 지키는 것은 노하기를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잠 16:32).
뿌리 깊은 영성은 나무의 뿌리와 같이 보이지 않는 마음을 가꾸는 영성입니다. 뿌리 깊은 영성 수련회에서 우리는 고요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침묵 기도 중에 마음을 고요히 가꾸는 법을 배웁니다. 안식을 통해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2-3).
수련(修練)은 자신을 갈고 닦는 일이며, 그 중심에는 수정(守靜), 곧 마음의 고요를 지키는 훈련이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과 말씀 앞에 고요히 머무르십시오. 아침에 받은 말씀을 하루 종일 묵상하면서 마음의 고요를 가꾸십시오. 그 고요 속에서 하나님의 평화가 마음을 지키고, 그 평화가 삶의 태도와 외모까지도 빛나게 할 것입니다. 마음의 고요는 우리를 더욱 온유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빚어 가며, 결국 아름다운 관계와 행복한 삶을 열어 줍니다. 날마다 고요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평강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시기를 빕니다.
목양실에서 강준민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