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 신성욱 교수

[1] 한 프랑스 관광객이 뉴욕에서 매우 특이한 일을 경험했다. 파리 출신 카린 곰보(Karine Gombeau)는 뉴욕에서 유명 이탈리아의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점심으로 남은 피자를 포장해 호텔로 돌아가는 중, 그녀는 길거리에서 거지처럼 보이는 한 노인을 발견한다. 그는 더럽고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거나 피해 다녔다. 그러나 카린 곰보는 망설이지 않고 남은 피자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2]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굶주려 보입니다. 이 피자를 드세요. 그리고 부디 건강하세요.” 며칠 후, 그녀는 뉴욕의 한 일간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이 도운 그 남자가 다름 아닌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리처드 기어’(Richard Gere)였던 것이다. 당시 그는 노숙인 역할을 맡아 영화 『타임 아웃 오브 마인드』(Time Out of Mind)를 촬영하고 있었고, 실제 노숙자처럼 분장하여 거리에서 연기 중이었다.

[3] 카린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녀는 단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했을 뿐이었다. 이 소식은 전 세계 언론에 알려지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녀의 작은 선행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참된 친절”과 “차별 없는 사랑”의 본보기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 판단해볼 때, 카린의 행동은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기독교인의 모습과도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4]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애를 써왔다. 아쉽게도 기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은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아님을 알 필요가 있다. 그게 맞다면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점은 없을 것이다. 타종교인들은 자기네 신이나 교주를 열심히 섬기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

[5] 반면 기독교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섬기는 종교이다. 우리의 섬김에는 한계가 있다. 하나님을 섬기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의 섬김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죄로 망해야 할 우리에게 오셔서 은혜와 믿음과 사랑을 부어주셨다. 그렇다. 참 종교는 신이 먼저 인간에게 오셔서 은혜와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누구도 그분을 알거나 믿거나 섬길 수 없다.

[6] 눅 10:38-42절에 나오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마리아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마르다는 예수님 섬기는 일에 남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이 말씀으로 자신을 섬기시는 유일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분을 섬기는 일은 과감히 포기한 채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서 그분이 말씀으로 섬기시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유일하게 좋은 쪽을 택한 것이다.

[7] 그런데 요한복음 11장에 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에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시자 그 집에서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열었다. 이때 예수님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마리아가 아니라 나사로였다. 이때도 언니 마르다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럼 이때 마리아는 뭘 하고 있었을까? 이때도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님 발 아래 있지 않았다. 그럼 뭘 하고 있었나? 자신의 전 재산에 해당했을 향유 옥합을 깨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렸다.

[8]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마르다를 일 중심의 사람, 마리아를 관계 중심의 사람으로 평가한다. 마르다는 분명 일 중심의 사람이 틀림없다. 그녀는 항상 일하는 모습을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의 섬김을 받아야 할 때는 그분을 섬기는 일을 포기했고, 그분을 위한 날에는 자기 최고의 보물 1호를 가지고 예수님을 섬겼음을 알아야 한다.
요 11:1절에 이날은 “‘예수를 위하여’ 잔치하는 날”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9] 에베소서 3장에서 바울은 “갇힌 자”로서의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이방인을 향한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는 사명자라고 말씀했다. 비록 남들이 볼 때 당시 세상 사람들에게 무가치한 죄수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실상 ‘하늘의 부요함을 맡은 복음의 청지기’였다. 마치 거리의 노숙인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할리우드 스타였던 리처드 기어처럼 말이다.
하나님을 위하고 예수님을 위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10]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그분으로부터 섬김을 받아 말씀과 복음 진리로 채워져야 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
사람은 똑부형, 똑게형, 멍부형, 멍게형, 이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사람이고, 똑게형은 똑똑하면서 게으른 사람이고, 멍부형은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사람이고, 멍게형은 멍청하면서 게으른 사람이다.

[11] 이중 최고의 유형이 뭘까? 그것은 ‘똑부형’이다. 그렇다면 똑부형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유형에서 최악의 유형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답이 나오겠지만, 최악의 유형은 ‘멍부형’이다. 참된 지식이 없이 멍청하면 게을러야 한다. 그런 이는 교회에 도움은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교회를 망치는 주역이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멍부형’의 교인이다. 참 지식이 없음에도 열심은 특심인 사람들이 있다.

[12] 참 지식은 없는데, 부지런하고 열심만 있는 갖춘 교인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사사건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간섭하고 말을 내고 시험에 빠지게 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주님을 섬기는 일은 성도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알고 적용해야 문제가 없다. 위로부터 채워지지 않은 사람들이 부지런하고 열심을 내면 교회는 힘들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 당신은 ‘똑부형’인지 ‘멍부형인지’ 겸허하게 점검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