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종종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됩니다. 저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모세를 카리스마적 리더로 분류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념비적 유고인 『경제와 사회』(1922)에서 모세를 예수, 선지자들, 마호메트, 조로아스터, 붓다와 함께 카리스마적 리더로 분류했습니다. 베버에 의하면, 카리스마적 리더는 족장이나 왕 같은 전통적 리더,그리고 관료나 행정가와 같은 법적-합리적 리더와 대조된다고 말했습니다.
카리스마적 리더의 대표인 모세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세운 지도자입니다. 그는 도망자로 살던 미디안 광야에서 80의 나이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선지자로 소명(召命, calling)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거절하는 모세를 불러 기적을 보이시며, 당시의 최대 강국 중의 하나인 이집트로부터 노예화된 히브리 민족을 해방 시키도록 합니다. 수많은 난관과 기적을 경험한 모세의 지도력을 이루는 기반은 천부의 은사(恩賜, gift), 곧 카리스마였습니다. 당시의 이집트의 신들에 대한 무력화라는 10번의 재앙을 통하여 승리한 모세는 이집트의 노예 생활을 청산합니다. 구원의 원형적 사건인 출애굽은 ‘시내산 언약’(출애굽기)과 ‘모압 언약’(신명기)을 통해 제도화됩니다.
출애굽의 이야기는 혁명과 건국을 추구하는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의 지도자들에게 상상력과 비전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제공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한 40년의 세월은 혁명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많은 변혁의 지도자들은 모세로 상징되기도 했습니다. 출애굽과 모세의 이야기는 특히 미국의 건국 과정에서도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한 성스러운 이야기였습니다. 영국과의 혁명전쟁(1775-1783) 가운데 1776년 독립을 선언한 미국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은 종교적 상징을 담은 건국의 신화를 공유했습니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인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존 애덤스, 벤자민 프랭클린, 제임스 매디슨 등은 미국을 세울 때, 그들이 단순히 정치체제만이 아닌, 상징적이고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건국 신화”를 함께 형성하려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세와 출애굽(Exodus)의 이야기는 정치적 담론의 핵심이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들과 300만 시민, 특히 약 200만의 청교도들은 자유를 열망하는 자신들의 상황을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에 비유했습니다. 출애굽의 비유는 식민지 주민들에게 정치적 혹은 도덕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독립선언서의 서명자, 의사ㆍ정치가이자 장로교 신자였던 벤자민 러쉬(Benjamin Rush)는 “우리가 홍해를 건넜고 이제 광야에서 방랑하고 있으나, 가나안이 우리의 목전에 있다”고 그의 1776년의 편지에 기록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개인의 생각일 뿐 아니라 상식이자 교양이었습니다. 독립전쟁의 총사령관이었던 조지 워싱턴도 모세와 비견되는 카리스마적 리더로 인식되었습니다. 워싱턴이 물론 모세의 기적이나 하나님의 초자연적 권능을 보여주지는 않았으나, 당시의 성직자들과 군인들은 워싱턴을 일컬어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 미국의 모세입니다”(He is our American Moses).
워싱턴이 총사령관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뒤, 그는 왕 추대를 거절하고 자기 농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영국 청교도 혁명에서 공화제를 주도한 하위 귀족 젠트리 출신이었고, 전쟁의 승리 이후에도 그 이상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1787년 헌법제정을 위해 의장으로 일했고 1789년 헌법에 의해 만장일치로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2번의 직임을 마치고 물러나, 이후의 모범이 됩니다. 미국의 독립에도 경력보다 인격이 더 빛났던, 출애굽의 카리스마적 리더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