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 존 G. 웨스트 박사(Discovery Institute의 부사장) ©CP
존 G. 웨스트 박사(Discovery Institute의 부사장) ©CP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을 비롯한 많은 미국 명문대학들은 개신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학교는 그 신앙적 정체성을 잃고 점차 세속적인 기관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19세기 후반,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새로운 세대의 대학과 신학교를 세우며 기독교적 정신을 계승하려 했다.  

하지만 최근 위튼 칼리지(Wheaton College)를 둘러싼 논란은 이러한 시도가 다시금 실패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문제는 위튼만의 일이 아니며, 미국 전역의 복음주의 대학들 전반에 해당된다. 

필자는 12년간 시애틀 퍼시픽 대학교(Seattle Pacific University, 이하 SPU)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기독교 대학이 어떻게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지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SPU는 1890년대 경건한 프리 감리교인들에 의해 설립된 학교로, 위튼과 마찬가지로 복음주의 전통을 지닌 대표적인 대학이다. 

겉보기엔 SPU는 여전히 자신을 "역사적으로 정통하고 명확히 복음주의적인 기독교 대학"이라고 소개한다. 입학 안내서에는 "SPU의 모든 활동은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교수들은 가르침과 삶 속에 신앙을 통합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교수진이 어떠한 신앙을 지니고 있는지는 점점 더 불분명해지고 있다. 

2021년, 교수진의 72%가 이사회에 대해 불신임을 표명하며 전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이유는 학교의 '인간 성에 관한 신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신조는 "성적 경험은 결혼 안에서, 남성과 여성 간에 표현되고 축복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성경적 결혼관에 반대하는 교수진이 절대다수를 이루는 상황에서, SPU가 기독교 대학으로 남을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SPU의 신학적 이탈은 성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졸업생 링컨 켈러는 자신의 경험을 담아 출간한 책에서 일부 교수들이 성경을 오류투성이이며 모순되고 신뢰할 수 없는 책으로 가르쳤다고 증언했다. 신앙의 기준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현대 학문이나 사회 문화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변화의 책임을 자유주의적 교수진에게만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책임은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지 못한 보수적 이사회에 있다고 본다. 

◈복음주의 유산의 소멸 

SPU에서 교수직 제안을 받을 당시, 한 동료 교수는 이사회가 신학적으로 보수적이라는 사실을 경고하듯 이야기했다. 실제로 이사회는 비정통적인 신념을 가진 종교학 교수의 종신 재직을 거부한 적도 있었다. 당시 나는 그 결정이 학교의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한 바람직한 조치라고 여겼다. 

1990년대 중반, SPU는 여전히 복음주의 정신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일부 비정통 교수들이 있었지만 일정한 기준과 한계가 존재했다. 이사회가 명확한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학문적 자유와 신앙적 정체성 사이에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새로운 총장이 부임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그는 이사회가 학교 운영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인식을 퍼뜨렸고, 점차 이사회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그 결과, 자유주의 성향의 인사들이 교수진에 다수 포함되기 시작했다. 

◈전환점: 교단의 손을 떠난 이사회 

2000~2001학년도를 전환점으로, 당시 총장은 프리 감리교단의 감독 권한을 약화시키는 계획을 추진했다. 기존에는 교단이 이사회를 직접 임명했지만, 새 구조에서는 이사회가 자체적으로 후임자를 정하고, 교단은 자문 역할만 수행하도록 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구조 개편을 넘어 기독교 대학의 신앙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학계에서는 이미 비슷한 사례들을 다룬 연구들이 있었고, 대표적으로 제임스 버트첼의 『빛의 소멸(The Dying of the Light)』은 교회의 통제가 사라질 때 세속화가 본격화된다고 분석했다. 

SPU 이사회는 이 같은 계획을 인지하고도 총장을 해임하지 못했다. 계획은 일시 중단되었지만, 총장은 상황이 잠잠해지자 다시 추진했다. 결국 2005년경에는 교단 출신 이사가 전체의 3분의 1로 줄었고, 이마저도 교단이 직접 임명하지 않게 되었다. 

이사회의 권위가 무너진 후, 진보적인 교수진은 더 이상 제약을 받지 않았고, 신학적 정통성을 지키려는 교수들은 오히려 밀려나게 되었다. 필자 역시 보수 성향의 동료 교수가 종신 재직을 거부당한 사건에 항의했지만, 총장도 이사회도 이를 막지 못했다. 

처음 내가 학교에 왔을 때는 자유주의 신학자가 종신 재직을 거부당했지만, 떠날 즈음에는 보수 신학자가 쫓겨나는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이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자신들의 신념을 조직적으로 지켜내지 못했다. 이들이 바로 SPU의 세속화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인 책임자들이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총장이 부임했고, 공식적인 신앙 고백은 아직 유지되고 있지만, 이를 실행할 만큼 신학적으로 견고한 이사회의 구성은 부족하다. 실제로 최근 SPU 체육관에서는 퀴어 페스티벌이 열렸고, 학생 신문은 이를 "환희와 축복의 축제"로 보도했다. 복음주의 정체성을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가장 먼저 중단했어야 할 일이었다. 

SPU는 지난 10년간 진보화와 함께 학생 수가 급감했으며, 현재 전체 교직원의 40% 감축과 19개 전공 폐지를 포함한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제도를 세우는 것보다 그것을 유지하는 일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SPU는 바로 그 유지의 실패가 어떻게 무너짐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의 사례다. 

※ 이 기사는 원래 존 G. 웨스트 박사가 Clear Truth Media에 게재했던 글을 크리스천포스트(CP)에 옮겨온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