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필자의 음악실 서재에 한 편의 그림 액자가 있습니다. 17세기 빛의 화가로 불리는 네덜란드 출신의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그림 “탕자의 귀향’입니다. 이 작품이 20세기를 대표하는 영성의 대가인 또 한 명의 네덜란드 출신인 헨리 나우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1996) 을 크게 변화시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렘브란트가 그린 이 작품의 원본을 나우웬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을 통해 나우웬은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그는 당시 하버드 대학교 교수직을 내려놓고 죽는 날까지 캐나다에 있는 “라르쉬 공동체 ”인 “데이브레이크” 에 들어가 지적 장애인들을 돌보며 마지막 까지 생을 살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 그림 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모습은 아버지가 방탕하다 돌아온 탕자인 작은 아들과 포옹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 두 사람의 그 모습에 못마땅해 하는 큰아들의 따가운 시선입니다. 이 장면을 보며 나우웬은 지적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것은 집을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두 팔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 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이 그림 안에 담긴 작은아들과 큰아들의 대조되는 모습을 보며 나우웬은 “예수님과 렘브란트가 바로 나의 회심을 염두에 두고 이 비유를 들려주시고 그렸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주님 자신이 작은 아들이자 곧 큰아들이라는 사실 역시 더욱 분명해집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의 기도 하시는 장면을 보면 나우웬이 말한 예수님의 모습이 비추어집니다. 누가 저자가 기록한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 옵소서 ”이 장면은 마태 저자나 마가 저자의 기록에 비해 비교적 온순하게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마태나 마가 저자는 예수님에 대해 ‘내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사오니 …’ 격한 감정을 표현한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큰 아들의 불평의 모습을, 이와는 대조적으로 작은 아들을 통해 아버지께 주권을 맡기는 순종의 모습을 표현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모습 속에서 바로 나우웬이 말한 대로 예수님의 큰아들, 그리고 작은아들의 양면성을 연상하게 됩니다.

한국의 조혜영 작곡가가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전경을 음악으로 잘 스케치하여 당시 예수님의 번뇌하는 모습을 생생하고 현장감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크게 세 가지 장면을 조명하게 됩니다. 먼저 겟세마네 동산의 전경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서서히 물러나는 듯한 모습을 연상하게 하기 위해 단조로 서주를 시작합니다. 이어 먼 곳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모습을 유니슨으로 비춥니다. 이어 카메라 앵글을 클르즈 업 해가는 느낌처럼 네 파트가 호모포니 화성을 이루어 예수님의 기도 장면을 가까이에서 보는 듯 조명해 줍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엇박자를 사용하여 땀이 핏방울 되듯 보이는 그 강렬함을 리듬을 통해 비춥니다. 그리고 바로 유니슨으로 대조를 이루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메아리로 울리듯 묘사하여 평화로운 여운을 남기며 어린양 되신 예수님을 가슴에 담게 합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두 마음을 그려놓습니다. 하나는 마치 큰아들의 모습처럼 불평이 섞인 항변? 같은 모습을 봅니다.”나의 아버지여 이 고통의 쓴잔을 내게서 멀리하게 하소서“ 다른 하나는 작은 아들이 주는 고백처럼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며 죽음으로 온 세상 구원할 어린양이 되겠다는 저항 속에 순종을 보여주는 위대한 장면을 연출하며 종결합니다.

이 음악을 통해 보이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장면은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인간의 약한 모습을 리얼하게 펼치신 한 단면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전폭적인 신뢰를 통해 그 십자가 고통, 그리고 죽으심을 겸연하게 받아들이신 인간 예수님의 다른 한 단면을 또한 여실히 보게 됩니다. 마치 나우웬이 램브란트가 그린 한 폭의 그림을 통해 모든 삶이 바뀌었듯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의 장면은 오늘을 사는 우리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한 것으로 도전시키십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주권이 하늘의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그 고난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으로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일상에서 나타나는 모든 일 가운데 두 마음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내리는 진정한 소망을 품고 그분만을 존귀케 하는 일에 쓰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느끼는 성취감 이나 패배감, 우월감 이나 열등감, 혹은 자랑 이나 낙심. 이런 것들은 결국 우리가 본향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생각입니다. 한편 내가 잘되어 우쭐해서 교만에 빠질 때, 혹은 세상에서 잘되지 않아 낙담에 빠질 때 이 또한 우리가 본향을 잃어버린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생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모든 조건과 환경에서 본향을 잃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으로 인한 소망을 매 순간 갱신하는 순례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