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인터뷰 /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
어느 날 나는 하나님과 인터뷰하는 꿈을 꾸었다.
내가 물었다. “인간에게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대답했다.
“어린 시절이 지루하다고 서둘러 어른이 되는 것.
그리고는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것.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잃는 것.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 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지 못하는 것.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
그리고는 결코 살아 본 적이 없는 듯 무의미하게 죽는 것.
이 시는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의 <하나님과 인터뷰>라는 시입니다. 나짐 히크메트는 인생의 본질을 노래한 시인으로도 유명합니다. 그의 시 <진정한 여행>은 우리의 입과 귀에 친숙한 시입니다. <진정한 여행>을 소개합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후략> 이 시는 삶의 희망을 근사하게 노래한 시입니다.
나짐 히크메트의 또 다른 유명한 시가 <내가 만약 촛불을 밝히지 않는다면> 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이렇게 흘러갑니다. 내가 만약 촛불을 밝히지 않는다면/ 당신이 만약 촛불을 켜지 않는다면/ 우리가 만약 촛불을 밝히지 않는다면/ 이 어두움을 어떻게 밝힐 수 있는가?// 이 시는 삶의 책임을 감당하기를 촉구하는 명시입니다.
나짐 히크메트는 <하나님과 인터뷰>라는 시를 통해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합니다. 어릴 때 우리는 얼른 어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어른의 흉내를 냅니다. 여학생은 엄마 화장품을 훔쳐 화장을 해보고, 남학생은 아버지의 양복을 빌려 입고 어른 흉내를 냅니다. 모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모습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젊어 보이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성형외과는 늘 호황입니다. 세월 따라 나이답게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다음 연을 보실까요? 돈을 벌기 위해 무리하다가 건강을 잃고 나면 어렵게 모은 돈을 다 허비합니다.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싯귀입니다. 시인의 탁월한 표현력이나 번뜩이는 지혜가 담겨서가 아닙니다. 인생을 살펴본 시인의 관찰력이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인생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다음은 더 우리 뼈를 때립니다. 우리의 치명적인 실수를 고발합니다. 뭔가요?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 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지 못하는 것” 우리 인간이 이렇게 어리석습니다. 미래에 대한 염려로 오늘을 망치니 미래는 자연스럽게 더 망쳐집니다.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현재를 사는 것이 인생의 지혜입니다.
마지막 연은 우리 인생의 치명적인 실수들을 지적합니다.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삽니다. 이 짧은 인생을 살면서 영원히 살 것처럼 아등바등 삽니다. 시기하고 쟁투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망쳐버립니다. 그러다가 죽어야 할 순간이 오면 하루라도 더 살려고 아등바등합니다. 일생을 마치는 순간에도 결코 살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인생을 모르는 것처럼 허망하게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러니 우리 삶이 조악합니다. 이런 삶에는 감동도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이런 삶은 천박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늘 죽음을 의식하며 준비합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일상의 삶에서 삶에 대한 경외를 가지고 오늘을 삽니다. 지혜로운 삶은 영원히 살 것처럼 매일 매일의 삶을 만끽합니다. 아울러 오늘 삶의 종착역을 맞을 것처럼 늘 종작역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나짐 히크메트(Nâzım Hikmet, 1902년 ~ 1963년)는 터키 출신의 시인, 극작가, 감독입니다. 다재다능한 나짐 히크메트는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었지만 억압받는 대중과 이웃을 가슴에 품고 기득권에 저항합니다. 그는 터키의 대표적인 저항 시인입니다. 터키 정부의 제재로 그의 시는 터키에서는 판매될 수 없었지만, 그의 시는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판매되었고 세계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습니다.
나짐 히크메트는 현재 그리스 영토 사로니카에서 출생하여 이스탄불에서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전 세계에 전파된 자유, 정의, 평등, 인권 등 새로운 사상의 영향을 받고 나짐 히크메트는 1921년 터키 독립 전쟁에 동참하기 위해 아나톨리아의 이네볼루로 가던 중 헐벗고 굶주린 민중의 현실과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목격하고 그들과 교제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독일에서 온 스파르타키스트 터키 청년들을 만나 러시아 10월 혁명 등의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을 바꾸어 러시아로 떠납니다. 러시아 '동양 근로자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며 본격적으로 시를 창작했고, 러시아 시인 마야콥스키와 같은 무대에서 시 낭독을 하며 시인으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924년에 귀국하여 활약하다 체포되었으며, 터키 정부에 의하여 작품 발표 금지 처분을 받았고 죽을 때까지 모국(母國)에서는 시를 발표할 수 없었습니다.
시인은 터키에서 체포와 구금이 반복되는 삶을 살았고, 1938년 '군대 반란 조장죄'로 28년 4개월의 형을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로써 그는 총 55년의 형을 선고받고 실제로는 17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1944년 국내외에서 나즘 히크메트 석방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950년 7월 세계의 양심적 여론의 힘으로 히크메트는 일반 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같은 해 11월 그는 파블로 피카소, 폴 로브슨, 반다 야쿠보프스카, 파블로 네루다와 함께 세계평화위원회가 수여하는 '국제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모스크바, 프라하, 바르샤바, 부다페스트 등지로 떠돌아 다녔습니다. 물론 이 여행을 허비하지 않고 시작 여행(詩作旅行)을 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이런 여행을 계속하다가 1963년 6월 긴 투옥 생활로 얻은 지병으로 모스크바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생전에 그의 시집은 34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으나 터키에서는 출판이 금지되었다가 사후에 출판되었습니다. 1951년 박탈되었던 그의 국적은 2009년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조국 터키를 깊이 사랑하여 터키의 가난하고 우매한 농민을 사랑하는 시를 남겼고 인생의 본질을 노래한 많은 시를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