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추구하고 싶은 것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입니다. 하지만, 이 성공과 실패의 경계선이 어디인지 참 애매합니다.

르내 비오트(Rene Biot, 1889-1966) 라는 의사가 창설한 “리옹 의학, 철학, 생물학 연구회”에서 지난 1955년, 강연에 초청되었던 독일의 철학자요 교육가인 커트 한 (Kult Hahn, 1886-1974) 교수가 성공과 실패에 대한 하나의 역설을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기술의 역설에 대한 한 예입니다. “인간은 그의 기술적 성공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고 기술적 목표는 성공을 더욱 확실히 하자는 것이지만 기술의 승리는 인간의 파멸 즉 최고의 실패를 의미한다”라고 커트 한 교수는 말했습니다. 오늘날 현대문명이 주는 많은 이기 속에 점점 더 그것에 노예가 되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철학자 커트 한이 제시했던 말에 크게 동감이 됩니다. 결국 성공이 실패로 여겨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일의 깊은 내면을 보면 이것은 성공도 되고 동시에 실패도 되는 완성입니다.

이처럼 외면적 성공이 내면적 실패로 비출 수 있어 성공과 실패를 규정하기란 참 애매합니다. 이는 오늘날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으로 나타날 수 있고 또 오늘날의 성공이 내일의 실패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 부자들을 보면 그들이 모아놓은 재산을 진정으로 누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겠지만 자신의 삶 자체는 성공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성공 자체가 그들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성공과 실패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 것인가?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조화로운가 그렇지 못한가에 있다고 정신의학자요 기독교 상담
심리학자인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 1898-1986) 는 이야기 합니다. 이 하나님과 조화로운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의 절대성을 깊이 신뢰하며 모든환경 가운데서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신실하신 주님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찬송 가운데 토마스 오베디아 치솔름 (Thomas Obediah Chisholm,1866-1960) 이 작시한 “오 신실하신 주(Great is Thy faithfulness)” 는 이러한 고백을 붙들 수 있는 소중한 찬양입니다.

이 곡을 작시한 치솔름은 켄터키의 작은 마을 프랭클린 출신입니다. 그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열여섯 살에 교사가 되었고, 1893년 켄터키주의 윌모어에 있는 애즈베리 대학의 5대 총장인 헨리 클레이 모리슨(Henry Clay Morrison, 1857-1942)의 사역을 통해 치숄름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지성과 야망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스물한 살에는 고향 주간 신문인 프랭클린 애드보케이트의 부편집장이 되었고 이후 신학을 하여 1903년 감리교 목사안수를 받고 켄터키주 스코츠빌에서 목회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건강 악화로 인해서 1909까지 한 텀의 짧은 임기만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치솔름 목사님은 찬송시를 즐겨 쓰며 여생을 보내게 되었고 그의 생애 동안 1200편이 넘는 시를 써서 그 중 800편이 출판되었습니다. 1923년 치숄름은 이 “오 신실하신 주(Great is Thy faithfulness)”를 써서 무디 성경 연구소의 음악가이자 시카고에 있는 호프 출판사의 편집자 중 한 명이었던 윌리엄 H. 런얀(Rev. William H. Runyan, 1870-1957) 목사에게 보냈습니다. 런얀은 이 찬송시에 애착을 갖고 말하기를 "이 특별한 시는 너무나 호소력이 있어서 나는 이 곡이 효과적으로 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라며 깊은 영감을 더해 이 시를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서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삶이 힘들 때도 찾아오는 평안입니다. 하나님의 변치 않으시는 성품에 대한 증거인 “오 신실하신 주”는 인생에서 오랜 시련을 겪었지만, 그 모든 것을 통해 변함없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고백하는 자에게 얻어지는 귀중한 선물이 됩니다.

치솔름이 이 찬송을 기초로 한 말씀은 예레미야 애가3:23절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입니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성전이 함락된 직후 당시 유다의 운명이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때 쓴 것입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절망 중에서도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생각하며 그 속에서 소망을 바라보며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3:22 라는 고백을 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당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근본은 아무 대가 없이, 조건 없이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을 바로 깨달을 때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토저(Aiden Wilson Tozer, 1897-1963)가 쓴 “온전한 믿음을 추구함 (Toward a more perfect faith)에서 ”십자가를 따르는 사람은 십자가의 결과를 알고 있으므로 그것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십자가로 인해 사용한 시간과 돈이 얼마인지 계산하고 그것으로 거래하려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평범한 그리스도인에 불과함을 자신의 영혼에 폭로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십자가 앞에 우리는 아무 토시를 달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진정한 성공을 바로 깨달을 수 있고 비로소 이때 진심으로 찬송가”오 신실하신 주”를 마음에 담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