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마음/김현승

마지막 가을 해변에 잠든 산비탈의 생명들보다도
눈 속에 깊이 파묻힌 대지의 씨앗들보다도
난로에서 꺼내오는 매일의 빵들보다도
언제나 변치 않는 온도를 지닌 어머니의 품 안 보다도
더욱 다수운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언제나 은혜의 불빛 앞에 있다.

지금 농부들이 기쁨으로 거두는 땀의 단들보다도
지금 파도를 헤치고 돌아온 저녁 항구의 배들보다도
지금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주택가의 포근한 불빛보다도
더욱 풍성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것들을 모두 잃는 날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받았기에
누렸기에
배불렀기에
감사하지 않는다.

추방에서
맹수와의 싸움에서
낯선 광야에서도
용감한 조상들은 제단을 쌓고
첫 열매를 드리었다.

허물어진 마을에서
불 없는 방에서
빵 없는 아침에도
가난한 과부들은
남은 것을 모아 드리었다

드리려고 드렸더니
드리기 위하여 드렸더니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신다.

마음만을 받으시고
그 마음과 마음을 담은 그릇들은
더 많은 금은의 그릇들을 보태어
우리에게 돌려보내신다.
그러한 빈 그릇은 하늘의 곳집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감사하는 마음 - 그것은 곧 아는 마음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그리고
주인이 누구인가를 깊이 아는 마음이다.

   이 시는 <가을의 기도>로 유명한 김현승 시인의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시입니다. 시인은 이 시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다양하게 소개합니다. 1연은 따스한 것들을 계속 열거합니다. 그리고 가장 따스한 것이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정리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언제나 은혜의 불빛 앞에 있다.”라며 시인은 감사하는 마음이 은혜의 소산임을 고백합니다.

   2연은 감사의 풍성함을 소개합니다. 감사는 농부가 기쁨으로 수확하는 땀의 단들보다도 지금 파도를 헤치고 돌아온 저녁 항구의 배들보다도 주택가의 집에서 새어 나오는 포근한 불빛보다 더 감사하는 마음이 풍성하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언급한 모든 것들 보다 더 풍성한 이유는 이것들을 모두 잃어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3연은 더욱 극적이다. “받았기에/ 누렸기에/ 배불렀기에/ 감사하지 않는다//”라고 노래합니다.

받지 않아도, 배부르지 않아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조건의 산물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전천후입니다.

   4연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에서 감사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추방에서/ 맹수와의 싸움에서/ 낯선 광야에서도/ 용감한 조상들은 제단을 쌓고/ 첫 열매를 드리었다//” 처절한 절말의 상황,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의 마음이 있으면 감사가 터져 나오고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5연은 삶의 실존에서 경험하는 감사의 능력을 소개합니다. 허물어진 마을이나 불이 없는 방이나 빵이 없는 아침은 감사거리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 상황에 가난할 수밖에 없는 과부가 남은 것을 모아 드렸답니다. 드릴 것이 있어서 드린 것이 아니라 드리려고, 드리기 위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함한 것입니다. 감사의 능력입니다.

   6연은 감사를 대하는 주님의 마음을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마음만 받으신다고 합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면 더 많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의 상급을 노래합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며 힘차고 풍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그의 삶에서 경험한 숱한 하나님의 채우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7연이 이 시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시의 마지막 연이 가장 좋습니다. 저는 이 마지막 연을 읽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감사하는 마음— 그것은 곧 아는 마음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그리고/주인이 누구인지를 깊이 아는 마음이다.” 감사는 나를 알고 주님을 아는 순간에 시간된다. 감사는 나를 알고 주님을 알게 해준다. 그러므로 감사는 거룩한 지혜입니다. 감사는 능력이요 감사는 영적 지혜입니다.

   김현승은 1913년 4월 4일 평양에서 김창국(金昶國)목사와 어머니 양응도(梁應道) 사모의 6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곧 부친의 첫 목회지인 제주로 이주해 6세까지 지냈습니다. 7세에 전라도 광주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했습니다. 이런 이력 때문에 김현승의 출생지는 평양, 제주 광주로 알려집니다.

   김현승은 광주에서 숭일학교 초등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평양의 숭실중학교를 졸업한 후 1936년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해 문리과를 3년 다니다 1년을 남겨두고 병환으로 중퇴했습니다. 이후 조선대학교 교수로 1951년부터 8년간 재직하였습니다. 그 후 숭 모교인 숭실대학교 교수로 옮겨 임종할 때까지 숭실대학교 교수로 지냈습니다. 1970년 한국문인협회의 학회장을 지냈습니다.

   문단활동은 숭실전문학교 재학 때 교지에 투고했던 장시(長詩)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 양주동(梁柱東)선생의 추천으로 동아일보에 게재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낭만적 장시 <새벽은 당신을 부르고 있읍니다> <새벽 교실(敎室> 등을 발표했습니다. 1953년부터 광주에서 계간지 『신문학(新文學)』을 6호까지 간행하였습니다. 시인 김현승은 활발한 창작확동을 했으며, 신실한 신앙인으로 많은 신앙시를 남겼습니다.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대표, 시인 수필가)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대표, 시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