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야살의 책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습니다. 야살의 책은 성경 말씀에 두 번 등장하는 책 이름입니다. 성경 말씀이 2번이나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신뢰성이 있다는 뜻이 됩니다. 물론, 성경 66권의 권위에 필적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은 오직 우리가 가진 정경(Cannon)이라 부르는 신구약 66권입니다.
원래 야살의 책에는 모세오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말씀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고, 분량은 두 배입니다. 분량이 두 배인 이유는 창세기에 다 기록되지 않은 스토리들이 더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제가 틈틈이 읽고 있는 내용은 창세기의 일부가 한글로 번역된 번역본입니다. 오늘도 제가 최근에 읽은 흥미로운 창세기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창세기 1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셔서, 아브라함이 우상으로 가득한 자신의 고향집, 즉 아버지 집을 떠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창세기 11장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문투성이 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 앞뒤 전후에 아무런 사건이나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창세기 11장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늘 의문점이 있었습니다.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 그분의 주권적 선택과 섭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라고 주장하지만, “과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냥 임의로 선택하셔서, 부르신 것인가?”하는 의구심이 들며, 전혀 개연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사실, 창세기 11장을 읽으면, 마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오래전부터 알고 계시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서로 이미 관계가 있고, 신뢰가 형성된 듯한 분위기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야살의 책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기 전, 있었던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데라입니다. 데라는 당시 고대근동을 다스리는 니므롯의 신하였습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이 처음 등장하는 창세기 11장 바로 앞, 창세기 9장에 보면,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사라”고 표현되어 있는 니므롯이 등장합니다. 신학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용사다”라는 표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이라는 의미라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10장에는 바벨탑 사건이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시날 땅에 바벨탑을 세운 것은 단순히 탑을 세운 것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하나님을 무시하는 거대한 제국, 왕국을 세운 것을 의미합니다.
야살의 책에 의하면, 당시 니므롯과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있지만,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창조주로 하나님이시며, 죄로 가득한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노아 니므롯 데라 아브라함 모두 거의 동시대 사람들입니다. 노아가 그만큼 오래 살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노아는 자신의 자손들에게 온천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 자손들에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어쨌든, 아버지 데라가 우상숭배자이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는데, 둘 사이가 틀어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아버지 데라가 새로 집을 짓고, 꾸몄는데 그 안에 여러 우상의 형상들을 두고 아들 아브라함에게 크게 자랑을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가 우상을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상 가득한 아버지 집에 제사상을 거하게 차려 놓고, 도끼를 들고 가서, 제일 큰 우상 하나만 남겨놓고, 다른 우상들을 다 깨 부셔버립니다. 그리고 부수지 않은 우상의 손에 도끼를 얹어 두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데라가 집에 돌아와보니, 난장판이 된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범인을 찾다가 아들 아브라함의 소행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불러, “아들아 왜 이런 일을 벌였느냐? 이것은 나를 모욕하는 일이다”라고 다그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이건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냥 아버지가 섬기는 우상들에게 제사상을 차리고, 음식을 대접한 것 뿐입니다. 제가 제사상을 차리니, 작은 우상들이 깨어나서 막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우상이 화가 났는지, 작은 우상들을 도끼로 마구마구 부셔 버리더군요.” 아브라함의 말을 들은 데라는 불같이 화를 내며,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란 말이냐? 여기 있는 우상들은 다 내가 만든 우상이다. 내가 만든 우상이 어떻게 음식을 먹고, 어떻게 도끼로 서로 죽인 다는 말이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기다렸다는 듯 말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아버지, 사람이 만든 우상이 어떻게 하나님이 됩니까? 어떻게 신이 됩니까? 왜, 아버지는 아버지 손으로 만든 우상을 섬깁니까? 그게 말이나 되는 얘기입니까? 신은 우리 조상 노아 이전부터 섬겨온 창조주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아들이어서 어찌하지 못하여, 니므롯 왕에게 가서, 아들을 벌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결국 아브라함은 니므롯의 명령으로 마치, 다니엘처럼, 풀무불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를 꽁꽁 묶은 밧줄만 타버리고, 몸이 한 군데도 상하지 않고 살아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더 이상 아버지와 함께 살수도, 니므롯의 통치 아래에서 살 수 없음을 아시고, 그에게 “너는 본토 아비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제 왜 하나님께서 “네 고향을 떠나라”도 아니고, “우상이 가득한 땅을 떠나라”도 아니고, 하필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저는 아브라함에 관한 야살의 책에 기록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으면서, 2가지 사실이 깨달아져 은혜를 받았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때문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시고, 그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제가 깨달은 두번째 은혜는 하나님께 쓰임 받은 자들의 믿음입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실 때, 그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를 생각해보십시오. 남녀의 정절이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대에 아무리 천사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어떤 정신나간 남자가 임신한 여인을 아내로 삼습니까?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혼한 처녀가 천사의 수태 고지를 들었을 때에 처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문이 퍼지면, 자칫 죽을 수도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대단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여전히 신뢰합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