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일부 크리스천 그룹에서 유행된 첫머리글자 어(두문자어)를 팔찌나 목걸이 혹은 스티커와 포스터, 심지어 자동차 범퍼 등에 붙이고 다녔습니다. 그것은 WWJD (What Would Jesus Do)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입니다. 이것은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고려하고 그분을 위해 순종함으로 주님을 모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또 하나의 두문자어입니다. HWJW (How Would Jesus Worship)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예배하셨을까? 오늘날, 특히 코비드 이후에 온라인, 오프라인의 다양한 예배 형태가 나타나면서 예배의 본질에 대해 많은 혼란을 겪고 있는 이때 우리가 위와 같은 질문을 깊이 상고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가 예배의 본질적인 측면을 잘 발견하여 실천하도록 도우시는 우리의 롤 모델이자 멘토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삶은 공동체 안에서 헌신적이고 규범 있는 예배자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변함없이 성전과 회당에서 안식일을 지키며 예배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특히 요 4:23-24에 예수님은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라고 씀하셨습니다. 이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분명한 두 가지 사실은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 말씀하십니다.
이에 빗대어 필자는 다른 두문자어 하나를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HWJP(How Would Jesus Praise -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찬양하셨을까?입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함에 있어 대두되는 비본질적 요소들이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찬양하는 예배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속 선율의 차용, 악기사용, 다양한 장르의 사용 범위 문제 등입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궁극적으로는 찬양의 본질적 요소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들입니다. 정작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찬양하는 예배자들의 마음입니다. 음악의 미를 추구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 예술적 아름다움에만 심취되는 심미주의(Aestheticism), 또한 그 예술적 도구를 가지고 궁극적으로 나를 드러내려는 나르시시즘(Narcissism) 등은 특히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온전한 찬양을 하려는 예배자들을 끊임없이 유혹하게 만듭니다.
이때 우리는 HWJP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찬양하셨을까?를 가슴에 되새기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찬양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부분은 마 26:30 절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입니다. 이때는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공생애에 있어 가장 깊은 고뇌와 번뇌에 빠져있을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 최악의 고통인 십자가를 바라보고 가는 길에 쉽게 찬미가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제자들을 독려하시면서 시편의 찬송을 부르며 나아가는 그 모습 속에서 모든 조건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내면에서 깊은 소망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바른 찬양의 본질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조물주 되신 하나님을 칭송하고 높이는 찬양 행위는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을 바르게 제시하고 가르치며 어떠한 내용으로 어떻게 찬양 해야 할지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시편에 기록된 찬양들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르는 근본적인 목적은 믿음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표현하거나 그에 대한 우리의 감정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을 살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시편 마지막 장에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시편 150편에서 네 가지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 어디(Where)에서 찬양해야 하는지 제시합니다(1절). 성소, 권능의 궁창 -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모든 공간에서 찬양하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 무엇(What)을 찬양해야 하는지 제시합니다(2절). 능하신 행동, 지극히 위대하심-하나님의 창조, 구원 및 보존의 섭리뿐만 아니라 구속사의 전개 과정 주에 보여주신 크신 권능들을 통틀어서 지칭하는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어떻게(How) 찬양해야 하는지 제시합니다(3-5절). 관악기(나팔)와 현악기(비파, 수금) 그리고 타악기(소고) 등이 총동원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악기들을 총동원하라는 의미이지만 내 삶의 주어진 모든 상황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가(Who) 찬양해야 하는지 제시합니다 (6절). 즉 호흡이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모든 악기를 연주함은 물론이고 온갖 지정의가 담긴 영혼의 소리로 아름다운 찬양을 드려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멋있는 시편의 종결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찬양의 본질입니다.
스코틀랜드 소요리 문답에서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대해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는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이라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즐거워하는 것이 곧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영화롭게 할 것을 명령하심으로써 자신을 즐거워하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거울이 받는 빛은 거울이 주는 빛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내면에 우리는 그 기쁨을 맘껏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이, 특히 시편의 내용을 총 종합하는 150편이 주는 바른 교훈입니다. 순례의 길을 걷는 오늘의 모든 예배자가 시편 찬양을 통해 맘껏 하나님을 높이며 그 가운데 풍성한 기쁨을 맛보시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Halleluj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