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도 할 때 지나치게 조건을 놓고 기도하는 경우가 많음을 보게 됩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한 번 더 하나님께 간청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더는 말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모세는 그대로 순종합니다. 바울도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니 그대로 살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들 모두가 약한 것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고통이 그대로 있었는데도 할 일을 다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었는데 하나님이 하지 말라하자 순종합니다. 모세와 바울과 다윗 모두 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을 했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들어가겠다는 것은 조건입니다. 하나님 뜻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바울의 가시는 건강입니다. 건강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음에도 바울이 하는 일은 이루어집니다. 약할 때 오히려 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겠다는 조건을 내 세웁니다. 아들 솔로몬이 짓게 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 표적을 보면 맡김에서 순종으로 변화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맡긴다는 것은 네가 그 일의 주인 된다는 뜻입니다. 명령하면, 순종하고 명령이 없으면 가만히 있으면 되고. 사소한 일 시키면 하면 됩니다. 희생할 일 생기면, 그거 하다 죽으면 됩니다. 그러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 몸이 말하는 대로 본능에 충실하면, 자기 범주를 넘지 못합니다. 반면에 높은 수준의 말씀의 명령을 따르게 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희생이라 생각한 것이 자기의 길을 여는 힘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낯선 사람을 대접합니다. 아들이 없는 자기 문제도 크지만 그럼에도 이웃을 섬깁니다. 교제의 지평이 넓어져서 아브라함은 내년 이맘때 아들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게 됩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채우실 것입니다. 순종이 왜 좋은가? 순종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자를 추구하면 좁아지게 됩니다. 반면에 후자를 따르면, 깊고 넓어지게 되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율을 그리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타성의 힘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 휴대폰을 사고도 대개 디폴트 옵션을 바꾸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그대로 사용합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순종을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좋은 교회가 뭐냐? 한다면 디폴트 옵션이 좋은 교회입니다. 그냥 따르기만 해도 하나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지도록 설정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가정이 뭐냐? 한다면 그 분위기 속에서 자라기만 해도 복이 되는 디폴트 옵션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삶의 디폴트 옵션을 삼아야 합니다.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일꾼들이 쏟아져 나오게 될 것입니다. 순종만큼 좋은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