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중에 라오스 정창용 선교사님으로부터 선교 편지가 왔습니다. 이런 저런 일로 몸무게가 5킬로 그램이나 빠질 만큼 지난 4월은 바쁘고, 힘들었던 한 달이었다고 했습니다. 고아 학교에서 한국어 반을 개강했고, 수파누봉 대학교 학생들을 위해 한국어능력시험 반을 시작했고, 졸업하는 학생들과 7주간의 인턴십 과정을 마쳤고, 또 고아 학교 학생들을 위해 390명 분의 돼지고기 볶음을 만들어서 함께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선교 편지를 읽으면서, 무엇이 정 선교사님으로 하여금 이런 삶을 살게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 선교사님은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입니다. 55세가 되었지만 여전히 싱글입니다. 어찌 보면, 자기 몸 하나도 건사하기 쉽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기독교 박해국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라오스에 살고 있습니다. 루앙프라방 고아 학교에서 오갈 때 없는 고아들을 섬기고, 수파누봉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그 깜깜한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 선교사님이 우리 교회를 방문했을 때 했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쩔룩거리는 자신을 믿음으로 걷게 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자신보다 더 쩔룩거리는 라오스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겠다고 했던 정 선교사님... 그렇습니다. 자신을 만나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선교사님은 그런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틀 전에는 멕시코 이길로 선교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지난 번 단기 선교 기간 중, 우리 교회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너무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선교지를 방문해준 교회를 향한 격려의 말이라 이해할 수도 있지만, 선교사님의 말들은 진심이었습니다. 온갖 인본주의 기독교가 판을 치고 있는 이 시대에,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와 동역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 무뚝뚝한 선교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꼭 다시 와주세요..."
이길로 선교사님은 오하까 선교 센타를 설립하신 이주태 선교사님의 아들입니다.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은 절대로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멕시코로 이주했고, 청소년기부터 미국에서 공부해서 3개국어에 능통한 그가,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좀 더 부한 삶을 구하지 않고 좀 더 순종하는 삶을 구하고 있습니다. 전화도 터지지 않고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 산 속 마을들을 돌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교회들을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삶을 살게 하는 것일까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경험했던 사람을 살리는 감격 때문이 아닐까요?
어제는 오레곤에서 조영애 권사님 하관예배를 드렸습니다. 권사님을 보내는 마지막 예배를 드리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권사님이 살아 내신 험한 인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권사님과 헤어지는 슬픔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권사님이 평생을 사시면서 소원했던 한 가지 일,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 영원히 거하고 계심이 믿겨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는 목자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남은 인생을 그런 마음으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내 목자 되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길인 줄 믿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