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최지하 권사님 댁에서 몇몇 분들과 함께 위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3주 전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으셨기 때문입니다. 또 오늘 오후에도 지난 주 소천하신 여상림 집사님 댁에서 유가족 위로 예배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크기 때문입니다. 위로 예배라는 이름으로 모이지만, 사실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큰 슬픔을 당하였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소망을 주셨는지를 기억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예배 중에 여호수아 24:32,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죽은 요셉의 뼈를 약 400년이 지나서 요셉 지파가 유업으로 받은 세겜 땅에 묻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그런 수고를 했을까요? 이미 뼈 밖에 남지 않았는데 왜 요셉은 죽어서라도 그 땅에 묻히기를 원했을까요?
창세기 50:12 이하에,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시기를, 요셉이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애굽에서 죽은 야곱을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다고 하십니다. 당시 그들이 살고 있던 애굽의 고센 땅으로부터 막벨라 굴까지는 직선으로 320킬로가 넘는 거리인데 그 일이 쉬웠을까요? 아뇨, 그 일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왜 자신이 죽어서 그 땅에 묻혀야 하는 지를 똑똑히 들었고, 자신도 죽어서 아버지처럼 그 땅에 묻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 정착해 살았던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된 땅이 한 평도 없었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은혜로 거부가 되고 그 땅의 유력자가 되었지만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도 그녀를 묻을 땅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아직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 거민들이 그에게 무상으로 땅을 사용하라고 했을 때 창세기 23:16 이하에 보시면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은 사백 세겔을 달아...주었더니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고 하십니다. 땅을 거저 쓰라는 호의를 거절하고 굳이 값을 주고 샀다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땅을 사서 사랑하는 아내를 묻고, 자신이 묻히고, 또 그런 아버지를 따라 아들과 손자가 그곳에 묻혔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을 믿으십니까? 그 믿음 때문에 어떤 값을 치루고 계십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는 것이겠습니까? 믿음으로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위로예배를 드리는 일이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 땅에 묻는 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묻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묻고, 또 소망을 묻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위로가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