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영 교수(나눔교회 담임/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부교수)
(Photo : 기독일보) 안지영 교수(나눔교회 담임/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부교수)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목사나 교회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질 않았습니다. 특히 선교에 관한 일로 내가 초기에 속해 있던 선교단체를 대표해서 여러 기관과 교단의 목사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목사 혐오증'이 점점 더 심해졌던 것 같습니다. 평신도 출신 선교사였던 내가 목사에 대해 받은 인상은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 아니 점점 목사에 대한 혐오감이 쌓이게 되더군요. 일반 성도와는 다른 특별 신분인 '성직자'라는 태도를 풀풀 풍기는 경우에는 더욱더 거부감이 들곤 했으니까요. 교회를 목사의 전유물로 여기는 태도 또한 자주 목격하면서 부정적인 인상이 더 깊어졌던 것 같습니다. 모든 목사가 그런 게 아닌데 말입니다.

게다가 나 자신도 목회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자라는 걸 보았습니다. 목회자는 다른 사람을 품어야 하기에 마음이 넓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질 못했으니까요. 나는 다른 사람의 심리를 빨리 파악하는 편입니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의 숨은 동기를 유별나게 빨리 알아채곤 했지요. 그러다 보니 상대방을 품기보다는 그 사람의 문제를 비판하는 게 훨씬 빨랐습니다. 그래서 내가 속했던 선교 기관의 동료들이 나의 별명을 "딱따구리"라고 붙여줄 정도였습니다. 한마디로, 나의 지적이 불편하다는 것이었죠. 당연한 반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이런 나에게 '목회'는 가당치 않은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래리 크랩의 책을 읽다가 그만 '목회'에 대한 부담이 내 속으로 훅 들어와 버리고 말았으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쉽지 않았지요. 이렇게 고민이 깊어질 때마다 주님께, "저는 마음이 넓지 못합니다. 목회는 사람을 품어야 하는데, 저는 그럴만한 그릇이 되지 못합니다'라고 토로했지요. 그런데 그때마다 주님께서는, "목회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 너는 내 말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실랑이를 벌이기를 약 7년 정도 하다가 결국에는 목회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과하티케 부족어로 신약성경을 봉헌했던 2000년에 성경번역 사역을 마무리하고 난 후, 목회 현장으로 사역을 바꾸기 위하여 2002년에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내가 마흔일곱이 되던 해였습니다.

그러다가 신학교 1년을 남겨두고, 그동안 약 2년 동안 함께 성경공부 했던 네 가정을 중심으로 교회 공동체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이 2004년 9월 5일 첫째 주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목회를 약 20년 가까이 해오면서 목회자의 심리를 살피게 되었습니다. 이 네 가정은 내가 선교사로 방문한 교회의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대학 시절 청년 모임에서 내가 선교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 적이 있는데, 그 교회가 나를 후원하면서부터 나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들은 선교에 마음을 두고 미국으로 건너와 선교의 가능성을 찾아보는 중에, 내가 근처 신학교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들과 나의 만남은 약 20년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청년 때 만났을 때와는 달리 그때는 모두 가정을 이뤘을 뿐 아니라 새로운 비전을 위해 함께 다니던 직장을 뒤로 하고 태평양을 건너 달라스로 이주해온 거지요. 대학 시절을 같이 보내고 직장도 같은 곳에서 근무했을 뿐 아니라, 신앙생활도 같은 교회에서 함께 했기에 정말 끈끈한 유대감을 가진 그룹이었습니다. 달라스에 와서도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활동했을 정도니 네 가정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정말 남달랐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새로운 비전을 품고 태평양을 건너와 사업을 시도했지만 예상치 못한 장애물들을 만나면서 이민자의 삶이 녹녹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청년 때 가졌던 하나님을 향한 열정은 식지 않아 보였습니다. 더구나 성경 말씀에 대한 목마름이 컸던 것 같았지요. 내가 달라스에 왔다는 소식을 듣자, 숙소에서 짐을 풀고 있는 나를 찾아와서는 성경공부를 도와달라는 거였으니까요. 내겐 진한 감동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때 그 느낌이 생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주일 저녁에 한 집에 모여 성경공부 모임을 했습니다. 각자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나를 포함한 다섯 가정이 모여 성경공부를 2년 정도 하였습니다. 내가 인도한 소그룹 성경공부는 일반 성경공부 교재를 가지고 하는 식이 아니었습니다. 성경본문을 읽고 궁금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을 찾아내는 것에 익숙하도록 돕는 걸 우선으로 한 방식입니다. 또한 그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본문의 배경과 문맥을 살피도록 안내하는 식이지요. 대부분의 성경공부 교재가 단답형인데 반해, 나와 함께 하는 성경공부는 성경 본문을 본인들이 직접 살피도록 안내하는 방식입니다. 다시 말해서, 본문을 관찰, 해석, 적용의 순서로 접근하는 귀납법적 방식이었습니다. 나의 역할은 그들이 그 방식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지요. 이런 방식으로 성경 공부하는 걸 처음 경험한 그들은 성경공부의 새로운 맛을 경험했던 것 같더군요. 성경 본문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지요. 이렇게 매 주일 저녁에 모여 성경공부를 함께 했던 그 시간이 참 즐거웠습니다. 목사에게 일방적으로 강의를 듣는 성경공부가 아니라 본인들이 직접 참여하니 훨씬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지요.

이렇게 2년 정도 소그룹으로 성경공부를 지속하다가 결국에는 이들이 중심이 돼서 한 가정집에서 교회 공동체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2004년 9월 첫 주일에 시작한 교회를 섬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목회하면서 나는 목회가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처음부터 목회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어 놓고 그에 따라 실행했던 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목회 현장은 마치 선교현장에 첫 발을 내디뎠던 그때와 다름이 없었었습니다. 모든 게 새로웠고 서툴었지요. 수 없는 시행착오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내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니, 너는 내 말을 따라오기만 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의중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네요. 다시 말해서, 목회자에 대한 불신과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던 나는 목회와 교회에 대한 본질을 배워가는 중이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목회와 교회의 비밀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나를 목회 현장으로 부르신 것은 아닌가 합니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여전히 그 깊이가 일천하지만, 그런데도 교회를 향한 내 마음의 문이 훨씬 더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주 소중하게 다뤄야 할 주님의 보배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