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이 영국을 지배했던 15세기 초엽이다. 헨리 4세가 왕위에 있었던 이 시기에 천주교는 심각하게 타락했었다. 당시 가톨릭 교회는 화체설을 강하게 주장하며 성찬식에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가 진짜 예수님의 살이요 피라고 가르치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단으로 정죄했다. 물론 이단으로 정죄되면 경우에 따라 사형도 당했다.
주교들은 회개로 얻는 용서가 아닌 뇌물을 받고 사죄를 선포하는 악을 행했다. 나아가 그들은 라틴어 성경만이 유일한 성경이라고 가르치며 영어 성경을 읽는 것을 이단적 행위라고 가르쳤다. 영어 성경을 읽다가 적발되면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화형에 처해지는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재봉 직공 바비도는 '영어 성경 읽기회'에 참가하면서 영어 성경을 읽고 참 진리를 깨달으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바비도는 사제들의 거짓과 위선에 분노했다. 사제들은 성경의 해석을 독점하고, 평범한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었다는 무리한 주장을 하고, 온갖 죄를 자행하면서도 '자신들의 삶과 언어는 거룩하다!'라고 우기는 모습이 역겨웠다.
당시 교황청은 순회 종교 재판소를 운영했는데 자신들의 권위가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로마 교회는 성직자들의 지도를 받지 않는 자들을 정죄하고 잔인하게 처형했다. 주로 화체설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정죄의 대상이었다. 순회 종교 재판소는 이단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은 용서하고 방면하였다. 하지만 전향과 회개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잔인하게 화형 시켰다.
바비도는 온 세상에 넘치는 타락을 본다. 천주교 지도자만 타락한 것이 아니었다. 성경만이 진리요, 그 밖에 모든 것은 천주교 성직자들의 허구라고 열변을 토했던 '성경 읽기회' 지도자들이 너무 쉽게 무너졌다. 종교 재판정에서 성경 읽기회 지도자들은 너무 비겁하고 초라했다. 그들은 재판정에서 너무 쉽게 자신들의 신념을 포기했다. 그들은 쉽게 영어 성경을 읽는 것이 잘못이요, 성찬의 빵과 포도주는 틀림없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라고 시인하고 눈물로써 회개하고 목숨을 부지하였다.
그리고 자신처럼 신실하게 영어 성경을 읽고 복음을 받아들였던 성경 읽기회 일반회원들도 너무 쉽게 변절하는 것을 보면서 바비도는 또 충격을 받는다. 자기와 나란히 앉아서 영어 성경을 읽고 말씀의 진리들을 목숨으로써 지키겠다고 맹세했던 동료들이 화형의 위기 앞에서 신앙고백을 포기하고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바비도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 권력을 쥔 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양심과 양식이 마비되고, 힘없는 백성들은 생명의 위기에 너무 처참하게 무너졌었다. 바비도는 진리를 독점하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교회 세력들의 위선(僞善)과 가톨릭의 세력 앞에 양심과 신앙이 무너지는 대중들의 나약함을 보며 크게 실망한 것이다.
드디어 바비도가 재판을 받는다. 재판장 주교는 바비도에게 죄를 인정하고 뉘우칠 것을 설득한다. 바비도는 완강했다. 재판정에서 바비도의 바른 신앙과 신앙적 용기가 드러난다. 바비도는 주교에게 '성경을 영어로 읽는 것이 왜 악하냐?'고 묻는다. 주교가 '교회가 금하는 것이니 나쁘다'라고 대답하자 바비도는 '교회가 하는 일은 다 옳으냐?' 라며 도전한다.
주교는 '교회의 명령은 무조건 옳다'는 전형적 가톨릭 교회 논리 즉 '교회의 명령은 교황의 명령이요, 교황의 명령은 성 베드로의 명령이요, 성 베드로의 명령은 그리스도의 명령이다.'라고 강조했다. 바비도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며 스스로 '인간 폐업'을 선언으로 응수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사형당할 것을 공언한 것이다.
스미스필드 형장에는 바비도의 분형(焚刑)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무지몽매한 민중들은 세상에 대한 그들의 원망과 증오를 바비도에게 모조리 퍼붓는다. 그들은 바비도에게 발길질을 하고 침을 뱉으며 욕설을 한다. 무지몽매하고 악한 군중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헨리 4세의 아들 태자 헨리가 나타나 바비도를 구해 주겠다며 회개를 권유했다. 그러나 바비도는 '지옥에서 먼저 기다리겠노라'라고 빈정댔다. 사형대에 올라 불을 지피는 순간, 태자는 돌연 불을 끄고 바비도를 꺼내게 했다. 바비도의 용기와 신념에 감동한 태자 헨리가 바비도를 무조건 살려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비도는 태자의 동정(同情)을 뿌리치고 당당히 죽음을 택했다. 태자는 당황하고 바비도의 양심과 양심으로 추구하는 정의를 인정하는 독백을 했다. 이상은 김성한의 소설 <바비도>의 줄거리다.
작가 김성한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일본 도쿄 대학교 영문과를 거쳐 영국맨체스터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당대 지식인 작가였다. 1950년 서울 신문에 단편 <무명로>가 당선되어 등단한 후 영국역사, 그리스 신화 등 동서고금의 사회상을 무대로 종래의 서정적, 토속적인 소재 공간을 벗어났으며 특유의 지적이고 간단명료한 소설 기법을 선보여 한국 소설의 체질적 현대화에 기여했다. 철저한 역사적 고증 작업을 거친 간결한 문체의 작품들은 한국 역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로 평가 받는다. 이런 점에서 <바비도>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작품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바비도>에서 김성한은 영국에 실존 인물 바비도의 삶을 통해 양심을 지키는 용기의 힘을 보여준다. 평론가들은 '김성한이 이 작품을 통해서 격동기 조국 지식인들의 비겁함을 고발한 것'으로 평론한다. 아울러 15세기 영국 사회처럼 사회적 죄와 구조적 악에 불평하지만, 실제적 위협 앞에서 너무 무기력한 시민들을 고발한다.
오늘 우리는 어떤가? 이 시대의 지식인들은 진정한 용기를 가졌는가? 신앙인인 우리는 이런 용기가 있는가? 그토록 비난하던 군사정권을 민주화 세력들이 슬그머니 닮아 버렸다. 그들을 비난하던 사람들도 별 차이가 없다. 타도를 외쳤던 악과 죄를 반복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무기력하게 죄에 맞서지 못하고 무너지는 이 시대야말로 바비도의 용기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