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혈연에 연연하지 않는 가족 개념 지녀
'믿음으로 함께하는' 새로운 가족 관계 정립해
고아 돌보는, 기독교 복지제도 뿌리 역할 조성
한국교회, 가족 해체 현실 적극 대처할 준비를

박욱주 교수님의 이번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코너에서는 지난 편에 이어 5월 제75회 프랑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これえだひろかず) 감독의 한국 영화 <브로커>를 분석합니다. 배우 송강호(상현), 강동원(동수), 배두나(수진), 이지은(소영), 이주영(이형사)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이종락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베이비박스'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지난 8일 개봉 후 지난 편에서 분석한 <범죄도시 2>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가족과 혈연: 혈연에 의존하지 않는 온전한 가족의 조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대표작 <어느 가족>(2018)과 이번에 개봉된 <브로커>(2022)를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메시지는 가족의 참된 조건에 관한 것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진정한 가족의 조건은 혈연이 아니라 서로를 보호하고 아껴주는 마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로써 그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통용되는 혈연 기반의 가족 개념을 허물어뜨리려 시도한다.

이렇게 혈연을 초월하는 가족의 형성 조건을 내거는 고레에다 감독의 메시지는 기독교적 가족 개념과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있다.

물론 영화 <브로커>에 담긴 가족에 대한 그의 메시지가 기독교적 관점이나 동기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가 혈연에 연연하지 않는 기독교적 가족 개념과 유사한 생각을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경 속 가족 개념은 구약 시대에서 신약 시대로 넘어오면서 큰 변화를 겪는다.

구약 시대에는 가족 개념이 철저히 혈연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구약에서 온전한 가족의 조건은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혈연으로 맺어진 친부모와 자녀가 믿음의 계명과 전통을 받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이 개념이 갱신된다. 더 이상 혈연은 온전한 가족을 이루는 필수 조건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물론 사도행전에도 "일가"(행 10:24), "네 집" 혹은 "권속"(행 16:31-33)이라는 표현으로 혈연을 기반삼고 있는 가족 개념이 나온다. 그리고 이는 가족 단위 전도가 이루어지는 하나의 중요한 사역의 범주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이 표현들은 가부장적 질서가 확고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던 고대 로마 제국에서 가장의 회심이 가족 전체의 회심으로 이어지던 당시의 현실적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지, 원칙적 의미에서 신약적 가족 개념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신약성경은 가족이라고 할 때, 혈연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마 12:48)라고 말씀하신 부분에서, 이미 혈연에 근거를 둔 가족의 개념은 갱신되었다.

이에 따라 신약 교회는 혈연이 아니더라도 믿음으로 삶을 함께하는 신앙의 가족, 즉 교회에서의 '형제'와 '자매'라는 관계를 기반으로 새롭게 갱신된 가족 개념을 정립한다.

신약 성경의 이러한 가르침은 서구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기독교 복지제도 정립의 뿌리가 되었다. 고대와 중세 서구인들은 전쟁과 질병으로 인해 천수를 누리기가 쉽지 않았고, 그로 인해 대책 없이 남겨진 고아들이 많았다. 고아들 가운데 일부는 혈족이나 친척, 아니면 대부모(代父母)들에 의해 양육되기도 했다.

브로커
▲영화 <브로커>는 사회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는 범죄자들과 버려진 아이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는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가족의 개념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기회를 선사한다.

하지만 아예 돌봐줄 사람조차 없는 아이들은 대부분 교회에서 양육받고 성직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고아들을 돌보는 교회의 복지제도는 훗날 전문화되어 고아원으로 발전되었고, 오늘날에 이르러 서구 사람들의 입양 문화를 뒷받침하는 정신적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아원들도 대부분 개신교 및 가톨릭 단체들의 노력 덕분에 설립되고 정착되었다. 한국 개신교 선교 또한 고아들을 보살피고 교육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885년 한국에 도착한 언더우드 선교사는 얼마간 제중원에서 선교 기회를 엿보다, 바로 이듬해 고아원인 언더우드 학당을 설립했다. 이 언더우드 학당은 훗날 연세대학교 전신인 경신학당으로 발전되었다.

이것은 한국만 아니라 미전도지역에 기독교 선교사들이 처음 복음전파 사역을 개시할 때 자주 채택해온 방법으로, 혈연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온전한 가족의 근본조건이라는 신약적 가족 개념을 반영하고 있다.

◈가족과 신앙: 성경적 가족 개념에 근거한 기독교적 아동복지의 필요성

고레에다 감독이 혈연 중심의 가족 개념을 철폐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힘쓰고 있는 이유는 지난 20여 년간 일본의 가족 해체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일본은 2006년 이미 초고령사회(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로 진입했고, 그 후 지속적인 출산율 저하 및 결혼감소 추세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1인 가구가 급증하는 가족 해체 현상이 가속화될 뿐 아니라 부부간 결속도 점차 약화되면서, 이혼이나 별거 등으로 자녀에 대한 양육 책임을 제대로 담당하지 않는 부모의 수가 급증하게 되었다.

이렇게 자녀를 유기, 방치하거나 학대하는 사례가 빈발하자, 2019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일본 정부에 아동학대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 수립을 권고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양육책임 포기는 여러 사회문제로 이어졌는데, 최근에는 10세 이하 아동의 방치, 유기, 살해에 더해 10세 이상 청소년들이 이혼, 가정불화, 가정 내 폭력과 학대에 못이겨 '토요코 키즈'(トー横キッズ, 도쿄의 환락가 가부키쵸의 토호극장 옆에 모인 가출 청소년들)로 전락하는 현상도 발생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브로커
▲고레에다 감독의 <어느 가족>. <브로커>와 마찬가지로 범죄자들과 버려진 아이들로 이루어진 가족의 이야기를 휴머니즘의 시각으로 전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혈연에 의존해서는 달성하지 못하는 온전한 가족의 개념을 보여주고, 진정한 가족의 조건은 구성원끼리 서로를 돌아보는 배려, 애정, 희생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기독교 신앙과 문화의 영향력이 미미한 실정이다 보니, 생명과 인간에 대한 존중을 촉구하는 무종교적 휴머니즘을 통해 가족 해체와 아동인권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브로커>를 주시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마더>(2010)나 <코타로는 1인가구>(2022)처럼 일본의 아동학대나 유기, 살해에 관련된 작품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일본에서 벌어지는 가족 해체와 그로 인한 아동의 양육 환경 붕괴 등이 곧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경험하게 될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202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며, 일본보다 훨씬 파괴적인 출산율 하락과 결혼감소 상황에 처해 있다.

국가의 자원 상당 부분이 노인복지로 집중될 것이고,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복지와 지원, 관심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녀를 갖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는 세태가 지속되고 강화되면서, 낙태와 함께 아동의 유기, 학대, 살해 사례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현재 국내에서 낙태나 아동권리 침해 사례의 절대 건수는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여성의 적극적인 피임과 태어나는 아동의 절대적인 숫자가 줄어들어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오히려 비율상으로 아동권리 침해 사례 발생 빈도는 증가하고 있다.

브로커
▲한국도 일본과 유사하게 가족의 해체에 따른 아동의 유기, 학대, 살해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한국교회는 가족 해체와 그에 따른 아동인권 침해의 현실에 적극 대처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이는 단지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는 차원의 일이 아니라, 성경에서 가르치는 신앙의 가족 개념을 온전하게 지켜내는 신앙의 표지를 세우는 일로서 큰 중요성을 갖는다.

기독교 신앙인들에게 자녀를 열심있는 신앙인으로 양육하는 일, 특히 자기 친혈육이 아닌 아이들을 신앙인으로 양육하는 일은 최고 수준의 성숙한 신앙을 가진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영화 <브로커>는 곧 일본과 같은 가족 해체와 아동권리 침해 상황을 맞이할 한국 사회가 과연 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는다.

우리나라도 최근 아동학대 및 살해 사례에 대한 보도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유교적인 혈연 개념에 기반을 둔 가족의 울타리가 점차 빈약해지는 가운데, 아이들을 보호하고 양육할 책임을 회피하는 일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이 문제에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사이, 일본을 경유한 대중문화는 앞질러서 갱신된 가족 개념과 아동보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기독교회는 이처럼 악화되는 현실 속에서 혈연을 초월하여 신앙에 근간을 두는 성경적 가족 개념을 적극적으로 적용, 실천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위협을 더 잘 방지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버려지거나 유기되거나 학대받는 아이들을 더 잘 보호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과부와 '고아'를 돌봐야 하는 신구약 공통의 계명을 지켜내는 일이다.

박욱주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