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본지는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의 소논문 "포스트 코비드 시대, 사역의 변화에 따른 교회 예배와 음악"을 연재합니다. 오늘의 예배 음악을 진단하고 포스트 코비드 시대에 교회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II. 초기 기독교 예배를 통해서 본 예배와 음악 

2. 오늘날 교회 예배에 주는 도전들 

1)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가득찬 예배 공동체  

초기 기독교 예배는 그리스도의 복음 사건이 중심이 된 말씀과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성례전이 중심이 되고, 그 안에 삼위 하나님을 드러내는 뜨거운 찬양과 기도가 있었던 예배공동체였음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 (사도행전2:46-47) 이외에 다른 문서들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예배학자 로버트 웨버(Robert E Webber 1933-2007) 교수는 "이 때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예배란 너무나 큰 중요성을 띠고 있는 것이었기에 그들의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않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예배에 관해 기록하는것을 피했다."고 이야기 한다.

한편 듀크대학의 예배 역사학자 레스터 루스(Lester Roth) 교수는 월드미션대학교 '현대 예배와 찬양' 특강에서 초기 2-5 세기 기독교 교인들의 예배를 연구하며 그들이 예배에서 세 가지에 중점을 두었다고 정의한다.

그들은 경배를 우선으로 하였다.(Priority of Praise)

두 번째, 그들은 본질적인 것들에 반응하여 그 흐름을 예배순서로 삼았다.(Order of Worship as Flow of Essential Actions)

그리고 그들은 역동적으로 참여했다.(Dynamic Participation of the People)

이 같은 요소들은 초기기독교 교인들이 얼마나 예배를 깊이 경외하고 흠모했었는지 그 한 단면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

위와 같은 연구들은 기독교가 250여 년(64-313)가까이 로마의 매서운 칼바람과 같은 핍박과 시련 속에서도 말살되지 않고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를 보여준다.

1세대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의 삶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체험 신앙은 2세대, 3세대로 전환되기까지 그 뜨거움으로 연결되었다.

그들은 구약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성전과 회당의 예배 예전(Liturgy)의 전통을 잘 전수하여 본질을 훼파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모든 예배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삶에서의 예배를 실천했다.

그들의 예배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한 부활 신앙에 기초를 두었고, 예수께서 승천하심, 그리고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란 약속(행1:11)을 기억하고, 그것만이 중심이 되어 하나님을 경배하고 송축하는 예배자들이 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 예배자들에게 주는 교훈과 도전은 실로 대단하다.

오늘의 사회에서는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이 더 이상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사회로부터 밀려오는 교회를 향한 따가운 시선들은 교회를 차갑게 하고 멍들게 하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내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인 것이다.

한신대학교 오승성 교수는 오늘의 한국 교회를 이렇게 묘사한다. 오 교수는 "한국 교회는 지금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외적으로는 차이와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종교적인 배타주의와 사회적인 책임을 외면하는 집단적인 이기주의로 인해 사회분열을 초래하고 있으며, 내적으로는 제왕적이고 비윤리적인 목회, 불투명한 회계, 교회 세습 등과 더불어 교회의 심각한 노령화로 인해 교회가 존폐의 기로에 놓여 있다. 분명 한국교회는 그 누가 보아도 위기 상황에 있다."라고 이야기 한다.  

이와 같은 문제들이 오늘날 교회에 대두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예배자들의 예배관이다.  

오늘날 예배는 초기 기독교에서 가졌던 복음이 중심이 된 예배에서 많이 벗어나려 한다. 기복신앙에 기인된 개인주의, 그것으로 인해 결국 신앙생활의 목적이 내가 되고 나의 유익을 추구하게 되는 사상이 팽배하다. 또 삶의 윤리가 강조된 가르침이 주된 이유가 되어 정작 매 순간 기억 되어야 할 복음적 예배의 진리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되고 있다.

이시대 교회 예배 공동체를 바라보며 필자는 에이든 토저(Aiden Wilson Tozer 1897-1963) 목사가 쓴 예배론의 한 부분을 서술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겠다고 생각하면서 예배하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받지 않으실 수도 있다. 이런 예배를 가리켜 나는 '가인의 예배' 라고 부르고 싶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를 거부하고 정죄 하셨기 때문이다. 가인의 예배는 속죄가 빠진 예배 였다."

하나님께서 받으셨던 아벨의 제사는 믿음으로 정성껏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속죄의 예배를 드렸다. (히9:22) 이 전통을 이어받아 초대교회는 분명 그리스도의 대속의 복음으로 인한 속죄가 있는 기쁨과 소망이 가득한 예배공동체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신 사건을 예배를 통해 기념하고, 다시 오시리라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그 약속을 그냥 순수하게 믿고 그것을 고대하고 찬양하며 서로 나누며 통용했던 사랑의 공동체였다. (행2:43-47)

오늘날의 교회는 비록 초대교회와는 다른 시대와 문화를 갖고 있지만, 변질되지 않은 그 복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속죄의 보혈을 가르치는 참 된 교회인 것이다. 

토저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서술한다. "그러므로 나는 십자가의 속죄의 보혈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 에서는 단 한 시간도 머물고 싶지 않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구속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 에서는 '가인의 예배'가 드려질 수 밖에 없다".

십자가의 보혈이 중심이 된 복음적인 예배를 가르치는 교회로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깊이 점검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주권의 문제와 관점의 문제이다.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예배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에 있어 나의 만족을 위함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한 예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복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향한 것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이 코비드 펜데믹이 교회에 주고 간, 그리고 아직도 진행형인 말할 수 없는 불편함들을 여기 저기서 아직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늘의 예배에 관해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를 메가폰 소리로 들어야 한다.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는 "고통은 반항하는 영혼의 요새 안에 진실의 깃발을 꽂는다." 라고 정의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가득찬 예배 공동체 인 초기 기독교 교회 예배 진실의 잣대를 대고 오늘의 예배를 돌아보며 더이상 만사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환상을 깨드리고 메가폰 소리로 들려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머리와 가슴으로 받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아닌 하나님께 온전히 주권을 드리고 복음에 관한 것이 아닌 복음을 향한 예배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내는 이 진실의 깃발을 꽂아야 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