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Photo : 기독일보)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바울은 선교여행 때 갈라디아 지역을 선교하며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들에 거짓 선생들이 침투해서 갈라디아 그리스도인들을 거짓 복음으로 설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이 편지를 씁니다. 거짓 선생들은 행위가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바른 신앙의 진리를 가르치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 편지가 갈라디아서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유대교 율법주의와 기독교 사이에 분쟁이 있다는 교회 상황을 듣고 문제의 해결책으로 믿음으로 얻는 자유를 설명합니다. 죄의 형벌과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것은 행함으로 말미암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를 "그리스도인의 자유 대헌장 (Magna Charta of Christian Liberty)"이라고 부릅니다.  

갈라디아서는 율법과 죄로부터의 자유의 의미를 가르칩니다.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성령을 좇아 행함(5:16)으로 성령의 열매(5:22)를 맺는 삶이라고 가르칩니다. 바울은 또 자유 활용의 지혜를 가르칩니다. "자유를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5:13) 하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수신자 문제로 오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갈라디아서의 수신지는 어디일까요? 도대체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하며 염두에 두었던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신약 신학 학자들은 북갈라디아설과 남갈라디아설로 치열한 공방을 이어왔습니다. 갈라디아서를 이해함에 있어서 수신자들을 규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터키에 살면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지리들을 연구하는 마크 윌슨(Mark Wilson)박사는 자신의 저서 "Biblical Turkey"에서 AD 1세기에 갈라디아라 부르는 곳이 두 곳이었다고 합니다. 소아시아 북부지역에 원래 갈라디아 지역이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 갈라디아 사람들이 거주했습니다. 그런데 로마 정부가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갈라디아주를 남쪽에 두었습니다. 바울이 1차 여행 후반기에 거쳐 간 도시들 즉,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이 갈라디아주의 도시들이었습니다.    

북 갈라디아설은 소아시아 북부의 원래의 갈라디아 지방에 갈라디아서가 보내진 것으로 주장합니다. 이들은 갈3:1의 "갈라디아 사람들아!"라고 꾸짖는 말이 켈트족을 일컫는다는 강조합니다. 사도행전 16:6, 18:23에 언급된 갈라디아를 북쪽 갈라디아라고 봅니다. 교부들, 중세, 그리고 종교개혁가들은 북 갈라디아설을 지지했습니다. 그들은 갈라디아서가 소아시아 북부에 있던 고올족 또는 켈트족 그리스도인들에게 쓰여 졌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북 갈라디아설 주장자 라이트푸트 박사는 '갈라디아'는 '정치적 의미가 아닌 인종적 의미'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로마서와 고린도전·후서를 쓰기 전인 3차 전도여행중인 주후 57-58년경 마게도냐 아가야에서 썼다고 합니다. 제임스 모펫은 북갈라디아설을 주장하지만 저작 시기는 갈라디아서 1:6에 근거하여 좀 더 이른 53년경으로 봅니다.

남 갈라디아설은 소아시아 남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이 갈라디아서를 받았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의 장점은 사도행전 흐름을 따른다는 점입니다. 반면 갈라디아서에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더베 그리고 이고니온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다는 것이 약점입니다. 남 갈라디아설은 사도행전 16:6과 18:23에 언급된 갈라디아를 남쪽의 갈라디아로 봅니다.

영국 성서 고고학자인 윌리엄 램지(William Ramesy)는 바울의 선교지를 방문하여 연구했습니다. 바울의 1차 선교 여행에 방문한 기록된 도시들 즉,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지역이 갈라디아서 수신지라고 주장합니다. 안디옥 6세가 바벨론에 살던 유대인들을 이주하였던 것을 환기시키면서 갈라디아서가 율법주의자들을 위한 편지였음을 주장합니다.

윌리암 램지 그리고 F.F.브루스 등 영국 복음주의 진영은 남 갈라디아설을 따릅니다. 필자도 남 갈라디아가 수신지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갈라디아서가 예루살렘 공회(행15장) 이전에 기록되었다고 믿고, 북 갈라디아설은 예루살렘 공회후 2차 전도여행 중에 갈라디아서가 기록되었다고 봅니다.

남 갈라디아설을 지지하는 이유는 요세푸스의 주장대로 바벨론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의 강한 정체성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오랜 바벨론 생활에도 유대인들은 구약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비시디아 안디옥 지역으로 이주하자마자 회당을 짓고 율법을 고수했습니다. 바울의 선교로 예수를 믿었지만 구약의 율법을 포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을 선교하면서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고난(행14:19)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딤후4:11)."라며 자신의 고난의 경험을 간증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받고서도 참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성도들을 향해 '왜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 다시 종노릇하느냐(갈4:9)?'고 도전합니다. 그는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4:19)"라며 온갖 고난을 다시 겪더라도 바른 신앙인을 세우려 한다고 고백합니다. 눈부신 바울의 열정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