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Photo : 기독일보) 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어떤 사람은 참된 신앙은 이성적이고 냉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참된 신앙은 열정적이고 뜨거워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인은 절대 정치 참여를 하면 안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정치 참여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동성애자와 자살하는 자는 절대 구원을 못 받는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동성애자와 자살하는 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아빠는 허물없는 친구 같아야 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아빠는 권위가 있고 엄해야 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목사는 말씀을 잘 가르치고 설교를 잘 하는 목사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목사는 목양을 잘하고 행정을 잘 하는 목사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설교는 본문을 잘 설명하고 잘 이해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설교는 이해하기 쉽고 삶에 적용이 잘되는 설교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홀로 머무르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자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교회는 사랑이 풍성한 교회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교회는 공의가 살아 있는 교회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모든 것들을 다 균형있게 잘 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 잘할 수 없으니 한가지라도 잘 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관점과 생각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우리는 주장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정말 다름이 아니라,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유일한 구원자가 되시며, 삶과 생명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 틀림이라면 얼마든지 품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서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사람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창녀들, 현장에 붙잡힌 간음한 여인, 민족의 원수였던 세리,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이방인, 하나님의 저주라고 여겨졌던 병자들까지도 예수님은 넉넉하게 받아주셨습니다. 만약 율법 자체셨던 예수님께서 그 확실하고 엄중한 율법의 잣대로 그들을 대했다면 그들은 절대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받아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틀림에서부터 오는 위험성보다는 품고 받아주는 은혜로부터 오는 사랑이 더 본질적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자는 옳고 그름의 율법의 잣대로 사람을 무너뜨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주어 사람을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이 "은혜"를 통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을 죽이고 자기의를 세우는 가장 무서운 독이 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해 은혜 없이 엄밀하고 확실한 잣대로만 대하셨다면 우리가 이 자리에 과연 있을 수가 있었을까요? 

저는 그 누구보다도 진리를 진리답게 가르치고 전하는 목사이고 싶습니다. 죄를 죄라고 이야기 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제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죄인이었으며 그런 저를 살려주신 한량없는 그 분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벌레보다 못하고 그 어떤 자격 없는 자였음을 잊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그런 자였음을 안다면 마땅히 다른 사람을 받아주고 세워주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