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의 선택: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라는 책이 있다. 기독교 문화사역자 신상언 선교사가 집필한 저서로, 1990년대 한국교회 전반에 커다란 충격을 선사한 바 있다.
이 책 제목은 그 내용 전체를 매우 적절하게 표명하고 있다. 마귀가 어떤 방식으로 대중문화를 이용해 사람들의 영혼을 갈취하는지 분석해 폭로하는 것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신상언 선교사는 1960년대 미국 히피 운동부터 시작해 당대의 영화, 음악, 저술, 대체종교(특히 뉴에이지 운동) 등이 어떤 사상적 기원과 계보를 갖고 있는지를 밝히고, 대중문화가 매우 '은밀한' 방식으로 '사탄'을 대변하고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증거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교회와 신자들이 이처럼 위협적인 상황을 충분하게 인식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의 글은 분명 학문적으로 공신력 있는 이론과 증거를 온전하게 제시하지 못했다는 약점을 보인다. 그렇지만 강한 학문적 권위를 힘입지 못하고 있다 해서, 이 책에서 시도된 문화평론의 의도와 열정마저 폄하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 생각한다.
목회 현장에서 대중문화 때문에 맞부딪치게 되는 여러 문제들과 관련해, 그의 저서는 상당히 유익한 내용들을 전달하고 있다.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 출간 이후, 한국에서 문화평론을 시도하는 이들 가운데 크든 작든 이 저서에 영향을 받지 않은 이를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문화를 통해 침입하는 마귀의 친근하고 매력적인 이미지에 우려를 표명하던 기독교 문화평론가 및 문화 사역자들에게 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 속에 제시된 마귀나 사탄의 표상들은 비교적 간접적이고 은밀하다. 이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마귀나 사탄을 드러내놓고 찬양하거나 친근한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나 한국이나 사회적으로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당시 대중문화 속에 은밀하게 숨어있는 마귀와 이교 숭배의 표상들을 암호를 풀듯 이리저리 찾아보고 해석해내야 했다.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가 비판한 대중음악 밴드 비틀즈(Beatles, 왼쪽)와 뉴에이지 운동의 이미지(오른쪽) |
대략 2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재의 미국과 한국 대중문화를 보면, 기독교 문화사역자나 평론가들은 굳이 마귀, 사탄, 이교숭배, 오컬티즘의 표상을 뒤져서 찾아낼 필요가 없다. 대중문화 전반이 드러내놓고 루시퍼를 영웅시하기에, 이전처럼 따로 수고할 일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영화도, 드라마도, 음악도 마귀 혹은 사탄을 '빛의 사자' 즉 루시퍼라는 매혹적인 이름으로 불러대기에 바쁘다.
무엇보다 이 이름을 달고 등장하는 캐릭터 대부분은 '종교' 혹은 '기독교'라는 이름의 구시대적 굴레를 벗어던지는 혁신가의 모습, 인간에 대해 도도하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결국에는 인간을 돕는 친구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쯤되면 알 파치노, 키아누 리브스, 샤를리즈 테론 등이 열연했던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이 개봉한 1997년 당시 대중문화 조류가 반갑게 느껴질 지경이다.
이 영화는 마귀가 인간의 허영심과 공명심을 이용해 어떻게 영혼을 절망에 빠뜨리고 황폐화시키는지, 그 과정을 영상화하고 있다. 오늘날 루시퍼를 다루는 대중매체들 속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루시퍼의 매력: 빛으로 치장한 마귀의 이름
개신교회 내에서는 루시퍼란 이름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이 이름은 주로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되다가 대중화된 것이다.
구약성경 히브리어 '헬렐(הֵילֵל, 사 14:12)을 라틴어로 번역한 '루키페르'(lucifer)'가 '루시퍼'라는 이름의 어원이다. '헬렐'과 '루키페르'는 원래 둘 다 고유명사라고 보기 어렵다. '밝게 빛나는 자' 혹은 '밤하늘의 밝은 별'이라는 의미를 가진 보통명사로, 새벽녘 가장 밝게 빛나는 샛별(새벽별, 금성)을 지시하게 되면서 고유명사처럼 취급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선지자 이사야가 샛별을 지칭하는 이 용어를 사탄 혹은 마귀를 수식하는 용어로 사용하면서, 루키페르라는 이름이 마귀의 이름으로 오인된 것일 뿐이다.
개신교회에서 루시퍼라는 이름을 잘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이 샛별이라는 용어의 헬라어 번역어, 즉 '아스테르(ἀστήρ)'를 스스로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셨기 때문이다(계 22:16).
그래서인지 루시퍼라는 이름은 나름 교활함과 악독함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사탄이나 마귀보다는 순화된 명칭으로 볼 수도 있다. 사탄이 '원수, 대적자', 마귀가 '이간자, 고사(枯死)시키는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유념한다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적어도 지금까지 대중문화 속에서 마귀를 뜻하는 용어 '디아볼로스(διάβολος, 헬라어)', '디아블로(Diablo, 스페인어)', '데블(devil, 영어)' 등이 루시퍼만큼 친근한 이미지로 사용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루시퍼라는 이름으로 마귀나 악마를 친숙하게 그려내는 대중문화 콘텐츠는 현재로서 우리 삶의 도처에 널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일전 드라마 <화유기>에 대한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한국이라 해서 이런 처지에서 예외는 아니다. 미국 TV 시리즈 <루시퍼(Lucifer)>는 대놓고 드라마 제목을 이 순화된 마귀의 이름으로 채워넣고 있다.
▲<루시퍼>와 <화유기>. 두 작품 모두 루시퍼라는 이름을 매력적인 이미지로 포장하고 있다. |
사실 대중문화에서 이 TV 시리즈가 갖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마귀를 대단히 '인간적인' 성격을 가진 존재로, 인간이 공감하고 이해하며 심지어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포장하면서, 이런 전략이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 냈기 때문이다.
2016년 시작한 이 시리즈는 현재까지 시청자 호응에 힘입어 네 번째 시즌까지 방영됐고, 현재 마지막 다섯 번째 시즌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
성공한 콘텐츠나 서사의 복제가 빈번한 한국 대중문화계의 특성을 생각할 때, 특히 미국과 일본 콘텐츠에 대한 표절에 가까운 복제가 일상화된 분위기를 고려할 때, 마귀를 미화하는 루시퍼라는 이름이나 캐릭터의 등장이 일반화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결국 드라마에서는 <화유기>가, 웹툰에서는 네이버에 연재되고 있는 목요웹툰 <루시퍼의 경호원> 등이 이런 기조를 입증하고 있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루시퍼>가 방영되기 전인 2012년부터 이미 한국 대증음악계에서는 태티서의 <트윙클>이('빛나는 나, 난 하늘 아래 떨어진 별'이라는 가사) 루시퍼의 존재감을 '밝게' 드러내는 사례로 지목되곤 했다.
이런저런 정황들을 종합해볼 때, 신상언 선교사의 책 제목인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는 적절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에도 대중문화가 점차 기독교의 반대 세력인 마귀를 옹호하는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런 성향이 아예 노골화되었을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이런 분위기에 아예 둔감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또한 이런 분위기를 일찌감치 예견한 듯 다음과 같은 예언을 남겼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사단도 자기를 광명(밝은 빛)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