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한국 경제가 한참 어려울 때, 티비에서 방영한 개그 프로그램이 기억납니다. 어떤 가정에 고등학생 아들이 가출을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이렇게 외칩니다. "경제야! 돌아와! 아빠, 엄마가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잖니." 맞습니다. 아들 이름이"경제"였던 것입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너무나 잘 반영하는 기가 막힌 상황극이었던 것입니다.
최근, 3주 동안 개스 스테이션을 들를 때마다 평소에는 관심 없던 로또 당첨금액이 표시된 전광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지도 않을 로또에 왜 눈길이 간 것일까?" 당첨금액이 천문학적으로 올라가니 괜한 관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물질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물질이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물질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일단, 소유하는 일 자체가 만족을 줍니다. 그리고 그 소유한 것으로 다른 필요를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과 경제를 인생의 목적과 이유로 알고, 사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유욕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가들이 "로마가 왜 무너졌는가"를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그 이유를 2가지로 결론 지었습니다. 지나친 부의 축적으로 인해, 일을 하지 않으려 하는 풍조와 도덕과 윤리의 빈곤 때문이었습니다. 지나치게 부유해지자, 사회를 이끌어갈 지식층들이"국가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고가 자유분방해져서, 원래 있던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의 범주를 넘어서는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로마 계급층들은 동성애를 위해 어린 남자를 종으로 두는 것을 당연시 했다고 합니다. 성적인 타락은 윤리적, 도덕적 타락의 표상입니다. 그만큼, 로마의 문화는 심각한 수준으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가질 수 있는가? 어떻게 필요를 채울 것인가?"만을 고민하는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믿는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을 꿈꿔야겠습니다. 영적인 원리, 신앙적인 윤리와 도덕으로 더욱 무장해야겠습니다.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참 기쁨과 만족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때 경험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사실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