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정치권에서 한인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
미국 중간선거 다음날인 7일 뉴저지주 3지역구 개표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머쥔 앤디 김 연방하원 의원이 올해 6월 포트리 더블트리 호텔에서 열린 선거자금 모금 후원의 밤 행사에서 이번 중간선거에 대한 한인들의 관심을 촉구하면서 했던 말이다.
6일 캘리포니아주 39 지역구 연방하원 의원으로 당선을 확정지은 영 김 의원에 이어 또 한 명의 한인 연방하원 의원이 탄생하면서 한인사회 목소리와 역할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지고 있다.
6일 당선이 확정된 영 김 의원은 인천 출생으로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13세 때 가족과 미국으로 이주한 1.5세다. 괌에서 중고교를 다녔으며, 이후 캘리포니아주로 이사해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부터 지한파인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의 보좌관으로 21년간 일했으며, 2014년에는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 선거 현역 의원을 꺽고 당선돼 최초 한국계 여성 주의원으로 2년간 활동했다. 영 김 의원은 지역 한인교회들과도 친분이 두터워 오렌지카운티 지역 한인 목회자들과 기도모임을 갖는 등 신앙인으로 지역 목회자들의 많은 증거를 받고 있다.
7일 당선을 확정지은 앤디 김 의원의 집안은 전형적인 한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아버지는 소아마비로 보육원에서 자라났으나 미국 MIT와 하버드를 거쳐 유전공학박사로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 낸 인물이며, 어머니 또한 빈농 출신으로 미국에서 간호사로 활동하며 함께 아메리칸 드림에 합류했다.
앤디 김 의원은 뉴저지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후 시카고대와 영국 옥스퍼드대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거쳐 20대 후반이었던 2009년 9월 국무부에 입성하며 중동전문가로 줄곧 활약했다. 2011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의 전략 참모로 활동했고, 2013부터 2015년 2월까지 미국 국방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이라크 담당 보좌관을 맡았다.
앤디 김 의원은 평소 미국 사회에서 한인들의 역할과 관련, 정치권에 한인 공동체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북핵 등 한국과 관계된 일들이 미국 사회 주요 현안으로 다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인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앤디 김 의원은 말해왔다.
앤디 김 의원의 후보 시절부터 한인후원회장을 맡아 선거운동을 도운 임종부 변호사는 "미국 내 한인 인구 비율로 볼 때 최소 한인 연방하원 의원이 2명 이상은 배출되는 것이 마땅하며, 그동안 한인사회들이 이 분야에 관심이 적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상 최초로 한인 연방하원 의원이 복수 배출된 이번 미국 중간선거 이후 한인사회의 위상 또한 달라지게 됐다. 임종부 변호사는 "양 당에서 모두 젊은 한인 하원의원이 배출됨에 따라 향후 이민 사회 위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앞으로도 젊은 한인 정치인들의 미국 정치 입문의 길을 크게 열어주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인사회 위상의 변화에 따라 한인 이민자들의 50% 이상이 출석하고 있는 한인교회의 역할 또한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많은 한인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고 미국사회 현안에 대한 토론들도 교회 내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뉴욕교협 정순원 회장은 "한인 이민사회 최초로 두 명의 연방하원 의원이 탄생한 것에 축하를 드린다"면서 "한인교회들의 미국사회를 향한 올바른 목소리들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영김 의원의 선거운동을 한인교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왔던 오렌지카운티교협 회장 이서 목사는 "영 김 의원은 평소 한인으로나 신앙인으로나 정치인으로나 매우 훌륭한 면모를 보였고, 결과적으로 20년 만의 한인 하원의원으로 배출돼 기쁘다"면서 "영 김 의원은 선거운동 중에도 목회자들과 자주 만나 함께 기도했고 인품이나 신앙인으로서나 본을 보였다. 우리 한인사회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도 다니엘처럼 또 에스더처럼 크게 쓰임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