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여름이 얼마나 시원하며 상쾌한 가를 다시 느끼며 지낸 한 주였습니다. 동유럽 지역에 일어난 폭염의 열기를 몸으로 느끼다 돌아오니, 시애틀의 날씨가 춥다고까지 느껴졌습니다.

매일 매일 들려오는 아프칸의 소식은 어둡기만 합니다. 또 한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어디로 치달을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우리는 기도만 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신문 보도와 그에 대응하는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삶의 가치가 이렇게 확연히 다를 수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간 사람들, 절대로 쓸데없는 곳에 돈쓸려고 간 사람들 아닙니다. 그냥 세상의 가치로 따지자면, 의과대학 잘 나오고 의사 되어서 돈 많이 벌고 잘 쓰다고 사회에도 좀 기부하면서 살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겨질 것입니다. 굳이 그 위험한 곳에 그 고생하면서 들어가서 여러사람 걱정시키는 일 하는 것 세상의 가치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이해가지 않는 행위입니다.

또한 아프칸 말고 한국에도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 굶는 사람, 소외된 사람, 많이 있는데 그 사람들 돕지 왜 그 멀리 가서 비싼 외화 낭비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 방식으로 모든 사람들이 살았다면, 한국에는 아직도 반반한 의료시설 갖추지 못했을 것이며 학교도 없고, 기독교도 들어오지 않은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백년 전에 우리보다 휠씬 나은 문명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지도에 찍혀있는 한 점같은 나라 조선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들어와서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며 인재를 양성하였고, 하나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기에 오늘 우리가 모여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잣대와 가치관으로 선교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번 일로 장,단기 선교에 대한 계획과 전략을 수정, 보완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중복투자와 과시를 위한 선교도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나가서 잡혀있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나갔냐 따질 때도 역시 아닙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이며, 우리가 어떻게 비둘기같이 순결하며 뱀같이 지혜로울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하는 때입니다.

훗날, 우리는 아프칸의 기독교 역사를 이야기하며, 오늘의 고난과 순교를 말할 것입니다. 오늘 뿌려진 피 때문에 구원의 반열에 서게된 형제와 자매들의 간증을 듣게 되는 날이 꼭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이 이루어 지게 해 달라고 오늘도 그 땅을 향한 기도를 쉬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