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우리를 즐거움과 방탕함 사이에 두는 특별한 음료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 특히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에게는 더욱 신앙과 연결된다. 회식 자리에서의 술 거부는 다니엘의 신앙일까, 아니면 바리새인의 외식일까?
많은 교단에서 이미 음주를 허락하는 것을 볼 때, 이 문제는 더이상 신앙의 본질이 아닌 것으로 쉽사리 여겨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신학적·문화적으로, 또한 종교사적으로 훑어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한 책 한 권이 여기 있다. 감독교회 주교이자 조지아대 윤리학 강사로 재직 중인 C. K. 로버트슨(Robertson)의 「Religion and Alcohol: Sobering thoughts」이 바로 그것이다.
본서는 로버트슨 혼자 쓴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글을 모은 일종의 논문집과 같다. 그러나 주제 자체가 종교와 술에 대한 것이기에 그렇게 무겁거나 어렵지 않고, 오히려 정확한 정보 전달을 원하는 이들에게 적합한 교양서적이라 해도 무방하다.
종교적 전통에서 술의 사용과 역사적 배경에서의 음주 등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는데, 사실 큰 의미는 없다. 논문 주제를 나열하자면, 예수의 음주, 복음서 및 바울서신에 나타난 술과 성찬, 영화에 나타난 성직자들의 음주 묘사, 이슬람교와 술, 종교 의례에서의 환각제 사용과 술 등이 1부 내용이고, 중세 수도사들의 밀주, 디킨스 시대의 기독교 축제와 술, 금주령과 서던 컴포트(과일주의 일종)를 통한 음주, 알코올중독자협회의 유산과 종교, 음주의 영성 등으로 2부가 구성되어 있다.
전체 편집자인 로버트슨의 서문에 보면, 성경을 포함하여 꾸란과 바가바드-기타, 불교의 식카빠다에서 볼 수 있듯 의외로 술에 대한 교훈은 복합적이다. 금주를 권하면서도 축제의 상징으로 술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마실 것인가, 금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이 책의 범위가 아니며, 각 기고자마다 다양한 목소리를 낸다고(To drink or not to drink? Such a question is well beyond the purview of this book, which by the diversity of its chapter contributions speaks with not one but many voices)!
사실 정말로 그렇다. 그러나 로버트슨의 기고문인 알코올중독자협회에 관한 책에서는 금주 프로그램 12단계가 제시된다.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많이 유용할 듯하다. 또 일치된 관점이 아닌 각 에세이를 일일이 살펴보기보다, 흥미로운 몇몇 사실만 본 서평에서 다루고자 한다.
'예수는 술을 마셨는가?'라는 질문보다, 구체적으로 '예수가 마신 것은 어떤 종류의 음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첫 글에서 등장한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Samuele Bacchopcchi의 책 「Wine in the Bible: A Bibical Study on the Use of Alcoholic Beverages」가 잘 다루고 있다고 기고자는 밝힌다. 대체로 당대 그리스-로마와 유대 문화권에서 포도주(히브리어 야인, 헬라어 오이노스)는 꽤나 넓게 사용되어, 발효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새 포도주(혹은 포도즙)를 의미하는 단어가 따로 있다(히브리어 티로쉬, 헬라어 글류코스).
예수가 가진 별명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사실로 알 수 있는 것은, 어쨌든 예수는 당대에 실제로 발효된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이었으며, 금욕적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세례 요한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한편 겹쳐지는 내용은 성찬이다. 이 성찬은 유대교의 유월절 식사에서 유래한다. 유대교 유월절 만찬에서는 총 네 잔을 전통적으로 마시며, 예수가 마시지 않겠다고 한 것은 마지막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잔이다. 즉 이것은 금주 선언이 아니라 종말론적 선취라는 신학적 개념인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금주를 정죄하는 것은 도리어 이단으로 취급받았다(Charles de Koninck, 'Abstention and Sobriety' 참조).
역설적으로 만약 정말로 초기 그리스도인에게 금주가 교리였다면, '술 취함'에 대한 경고가 왜 나왔겠는가? 성찬에서 실제 발표된 포도주가 사용된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이 바카스 축제와 연계된다고 하지만, 분명 유대교 전통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예수의 피를 상징하기 위해 포도주가 사용되었다면, 그냥 붉은 색 음료이면 아무것이라도 상관 없지 않은가? 그때 성찬에서 발효된 포도주가 사용되었다 해서, 꼭 현대인도 성찬에서 그러한 포도주를 마셔야 하는가?
실제 오늘날의 포도주는 당대의 그것과 다르다. 호메로스의 글을 보면 20:1, 헤시오도스의 글을 보면 3:1, 유대 전통에 의하면 주로 3:1의 비율로 희석된다(3이 물이고 1이 발효된 포도주). 필자는 이것을 현대 교회가 각자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저자도 중요한 것은 성찬의 정신이지, 이런 문제들로 분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일침을 가한다.
그렇다면 평신도와 달리 성직자들은 어떠한가? '술 마시는 신부들의 초상'이라는 글에서 다루는 영화는 사실 유명한 것도 아니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상영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가족 만들기, 나의 길을 가련다, 매쉬를 포함한 8편이 다루어진다). 영화 속 음주 신부들의 상은 다양한데, 당대의 시대상,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배경이 꽤나 반영된다.
전쟁 이후의 술은 해가 된다기보다 다소 현실 도피를 가져 오는, 일종의 진통제 내지는 해독제로서 작용하며, 독신 신부에게서는 당연한 문화이기도 하다. 게다가 필자는 <나의 길을 가련다>라는 영화에서 젊은 신부 오말레이와 늙은 신부 핏츠 기본이 술잔을 마주치며 관계를 회복하고 헤어지는 장면 묘사를 읽으면서, 나아가 헝클어진 관계를 개선하는 훌륭한 역할도 감당할 수 있는 목양적 길을 읽었다.
한편 이슬람 문명권에서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국제보건기구(WHO) 조사에 의하면 이라크·모로코·이집트 등의 알코올 소비량은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에 비해 거의 1/10 수준이었다(다만 기고자의 인용이 조금 오래된, 1999년의 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무슬림들이 음주 문화권으로 넘어 올 때, 타협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굉장한 불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기고자의 인터뷰에 의하면, 어느 한 무슬림 여성은 '맥주는 냄새도 싫고 위스키는 역겹다'고까지 표현한다. 종교적 문제였던 술은 글로벌 사회가 되면서 이제는 문화 충돌로 이어지게 된 전형적인 예이다.
한 흥미로운 조사가 있었는데, 무슬림들은 남성 70%, 여성 90%, 그리스도인은 남성 27%, 여성 48%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 이 조사가 전부는 아니지만, 다원화된 사회에서 종교적인 부분이 이토록 크게 작용한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기고자는 주장한다. 단순히 건강의 문제를 넘어선, 타종교 존중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이 기고자는 이슬람교는 알코올 중독 예방에 큰 기여를 했다고 주장한다. 꾸란 47장 15절에 보면 낙원에는 신자들이 마시도록 예비된 깨끗한 물의 강, 우유의 강, 특히 달콤한 포도주의 강이 있다. 무슬림의 세계 이주(특히 유럽과 미국)는 하나의 현상이며, 그들과의 관계에서 알코올 소비 문제는 고려되어야 할 하나의 대상이다.
마지막으로 칵테일 문화를 다룬 내용을 살펴 보자. 미국 건국 초기 일반 시민들 사이에는 청교도 문화가 강하게 퍼져 있었기에, 술은 '악마의 음료(devil's drink)'라 불렸다. 그리고 미국인의 알코올 소비 문화는 1920년-1933년 있었던 금주령 시행과 관련이 깊다. 특히 남부가 더욱 그러하다. 모든 남부 주들은 빠르게 알코올을 금지했으나, 불법적인 알코올 음료가 생산되고 마구 퍼져나갔다.
기고자는 바로 이 미국 남부가 자동차 경기만큼이나 칵테일 문화가 발전한 곳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칵테일 소비 문화는 다른 파티 문화와 혼합돼 발전하는데, 이 모든 것이 순수한 알코올을 피하려는 보수적 신앙으로 인함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오로지 술이냐 아니냐의 단순한 방식 뿐인데, 이것은 또 다른 하나의 좋은 타협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고자는 이 글을 재밌게 마무리한다. '금주하세요..., 남부 스타일로 말이죠!'
앞서 말했듯 이 외에도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사실 다소 오래된 듯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담론의 대상으로 수면 위로 제대로 올라오지 못했고, 실제 아직까지 이런 책을 찾아보지도 못했다.
새해 목표를 금주로 잡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에 비해 술에서 자유한 그리스도인도 많을 것이다. 알코올 중독으로 고민하는 사람과 더불어, 타인의 술 문화에 대한 배려도 역시 우리가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이 책이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답안이 되진 않겠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줄 책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에라스무스가 금식일에 포마르(프랑스 브르고뉴 지방의 포마르 포토밭에서 생산된 레드 와인의 일종)를 마시자 많은 이들이 그를 비판했는데, 그는 이렇게 재치 있게 대답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 가슴은 가톨릭인데, 제 위장은 개신교로군요."
도서정보 제목: Religion & Alcohol: Sobering Thoughts
편집자: C. K. 로버트슨(C. K. Robertson): 더럼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감리교 감독이자, 에미상을 수상한 'Film Clips for Character Education'의 자문위원었으며, 현재 제너럴신학교(General Theological Seminary)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책으로는 「Episcopal Questions, Episcopal Answers: Exploring Christian Faith」, 「Conversations with Scripture- Acts of the Apostles」, 「The Book of Common Prayer: A Spiritual Treasure ChestSelections Annotated & Explained」등이 있다.
가격: 34.95달러(국내 미번역)
/진규선 목사(서평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