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렸어도 다시 아프리카 한센인 곁으로 돌아감은
한센인 통해 하나님 살아계심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

신응남, 신인환 선교사 부부
신응남, 신인환 선교사 부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위해 물질을 바치고, 예배를 드리며 기도 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삶 전부를 온전히 바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오히려 그 길을 앞장서서 달려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도 감사와 기쁨으로. 신인환, 신응남 선교사 부부가 바로 그들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그 힘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공급받는 것일까?

◈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해

신인환 선교사는 지난 2010년 간암 수술 후, 이번 4월 또다시 갑상선 암까지 수술하는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의지하고 기다리는 아프리카 부룬디 한센인들과 함께 있을 때가 오히려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라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그 곳에서 그들을 섬기다 뼈 묻기를 작정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한 영혼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뜻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선교는 '십자가 사랑'으로 해야

신 선교사는 간암 판정 후 죽음 앞에 서니 십자가 사랑이 더욱 더 절실히 깨달아졌다. 죽기까지, 남은 피 한방울마저 십자가 위에서 다 쏟으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저절로 깨달아졌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남은 시간을 묻는 그에게 하나님은 "내게 더 온유하고 겸손한 종이 되어라. 너는 나를 더 사랑하고 의지해야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선교사가 되고 보니 선교는 '사명'받은 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사랑'을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만큼 감당해야 할 고난과 역경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십자가 사랑'은 내게 주신 생명의 그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사'로 사용하실 뿐임을 체율하게 해주신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믿음을 주셔서 이 땅 시계추로부터의 자유함을 상급으로 주신다. 그것이 신 선교사 부부가 오늘도 감사와 기쁨으로 감내해 나가는 힘의 원천이다.

◈ 내가 만난 하나님

신인환 선교사는 21살 군 복무시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했다. 철책선을 바로 눈앞에 둔 수기사 군복무 때였다. 20킬로그램 무게의 군장을 하고 10킬로미터를 뛰는 첫 행군 4.5킬로미터 지점에서 낙오한 후 중대장의 도움으로 간신히 완주한 후였다. 낙오가 있을 수 없는 군대생활, 그는 어두컴컴한 운동장에서 혼자 쪼그려 뛰기 벌을 받고 있었다. 그 죽을 것 같은 절망의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신 선교사를 만나 주셨다. 그리고 그 때, 자기도 모르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아프리카의 가장 가난하고 힘든 지역으로 가서 그들을 섬기겠습니다"라는 서원 아닌 서원을 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확히 45분이 지나 있었다. 벌 받는 45분의 시간은 지난날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당시 신 선교사는 목회자가 될 생각도, 선교사가 무엇인지도 전혀 알 수 없었던 때였다. 그 후 그는 제대 후 10여 년간 목회를 하게 되었고, 2001년 2월 극동신문으로부터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송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현재는 인천방주교회(담임 박보영 목사) 소속 선교사로 파송 받아 사역하고 있다.

◈ 아프리카 한센인 섬기게 된 소록도 한센인촌 방문

신 선교사는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송 받은 후 가족과 함께 소록도를 방문했다. 그때 그는 그 곳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 민족이 버린 한센인을 오스트리아 의료 선교사들이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통해 그는 "이 세상 내가 택한 내 백성 가운데 가난과 질병으로 가장 고통 당하며 탄식하는 백성이 바로 아프리카 한센인들이다.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라"라는 거역할 수 없는 강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됐다. 그리고 미국 LA에서의 준비 기간을 거쳐 그들을 섬기러 아프리카로 들어갔다. 영문학이 전공인 아내 신응남 선교사는 LA에서 한의사 과정을 밟고 한의사가 됐다. 현재 이 한의술을 통해 아프리카 사막 한가운데에서 얼마나 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 모른다.

◈ 아프리카 한센인 사역

세계 전체 한센인은 약 4천만 명이다. 그 중 50%인 약 2천만 명이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다.

신 선교사는 2001년 첫 아프리카 한센인 사역을 시작한 이래로 아프리카 54개 나라 중 33개 이상의 나라를 돌며 한센인들을 돌보고 있다. 한센인병원과 촌을 방문하여 의약품과 휠체어 공급, 병원시설 지원, 한센인 생활대책 지원, 가옥 지붕수리 등을 지원하고 있다.

2015년 현재는 가장 환경이 열악한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집중 사역하고 있다. 피난민, 고아와 과부, 그리고 한센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작은 나라다. 신 선교사 부부는 부룬디의 수도 부중부라에서 약 4시간 거리인, 탄자니아 국경지역 무제라는 작은 시골마을에 거점을 두고 사역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센인 사역(학비, 지붕 고쳐주기, 약, 생활지원 등), 고아사역(학비, 교복, 생활지원 등), 장애인사역(휄체어, 클러치, 교복, 학비지원 등), 현지교회사역(시멘트, 아연지붕 지원 등), 선교센타(메디컬 하우스, 게스트 하우스, 미션 하우스 등)를 건립 중에 있다. 현재 선교센터 외장은 마무리를 끝낸 상태다. 그 외 내부(게스트 하우스: 변기, 문, 천장, 페인트/메디컬 하우스: 벽, 바닥, 시멘트, 창문, 천장, 문, 유리, 페인트/미션 하우스: 바닥, 벽시멘트, 유리, 창문/센터 전기: 연결과 설치) 마무리, 실내 인테리어, 실내 집기(의료기구, 식당 취사기구 및 식탁, 의자, 침구류 및 모기장 등)는 후방 성도들의 계속적인 기도와 후원으로 잘 진행될 줄로 믿는다.

아프리카 부룬디 무제마을에 세워지고 있는 미션센터
아프리카 부룬디 무제마을에 세워지고 있는 미션센터

◈ 미션센터의 비전

부룬디는 콩고, 차드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가난한 나라다. 긴 세월 식민지와 14년 내전으로 고통과 아픔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주일날에는 온 교회가 5시간 이상 예배를 드리는 예배의 영성이 살아있는 곳이다. 또한 피난민들이 많아 영어, 불어, 스와힐리, 키룬디 등의 언어를 혼용해 사용한다. 이들에게 선교에 대한 열정과 비전만 심어준다면 아프리카 대륙은 물론 세계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와 민족으로 쓰임받을 수 있게 될 것이 분명하다.

부룬디에는 의대와 병원이 있긴 하지만 그 환경이 너무도 열악하여 지금도 가난과 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래서 미션센터도 이곳에 세우고 있는 것이다. 현재 외장을 끝낸 미션센터는 약 1에이커 정도의 대지위에 건립되고 있다. 앞으로 그 주변의 약 3에이커 정도를 더 매입하여 한방, 양방 미션 메디컬 학교를 세울 계획에 있다.

아프리카 부룬디 무제마을 '미션센터' 건립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주민들이 기쁨으로 함께 하고 있다.
아프리카 부룬디 무제마을 '미션센터' 건립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주민들이 기쁨으로 함께 하고 있다.

미션 하우스와 게스트 하우스를 통해서는 아프리카 선교현지에 훈련된 의료 선교사들을 서부 아프리카 모슬렘 지역 한센인촌으로 파송할 예정이다. 지난 15년 동안 아프리카 한센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한의사인 신응남 선교사의 의료 치료사역 덕분임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아들은 다음세대의 아프리카 한센인 의료 사역을 위해 현재 UCLA 의과대학에서 공부 중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협력하는 선을 통해 천하보다도 귀한 그 한사람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은 가난과 한센병이라는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모든 족속을 포함하고 있다. 마지막 그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신 선교사 부부는 오늘도 목숨 다해 달려가고 있다.

◈후원방법
한국) 우리은행: 계좌번호: 1002-442-377304(신응남)
미국) HANMI BANK: account#: 010-699-279(Shin, In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