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연예계에 기념비적인 획을 그은 달이다.
20년만에 처음으로, 미국 네트워크 TV에서 시트콤 주연으로 아시아계 미국인을 발탁했다.
ABC 방송국의 프레쉬 오프 더 보트(Fresh Off the Boat)라는 시트콤은 방영 이후 높은 시청률과 함께 호평을 받고 있다.
며칠 뒤에는 조지 타케이(George Takei)가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의 강제 수용소를 소재로 제작한 뮤지컬 충성(Allegiance)의 브로드웨이 진출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몇십 년만에 처음으로 아시아계 미국인이 제작을 맡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탄생하게 된다.
화룡정점으로, 닥터 켄(Dr. Ken)이 ABC의 파일럿 작품으로 발탁됐다. 행오버(The Hangover) 시리즈 시트콤 커뮤니티(Community)에 출현했던 켄 정(Ken Jeong)이 주연을 맡는다.
몇년 째 아시아계 연기자가 더 높이 부상하기를 기다려오던 내게, 이런 흐름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리란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그림자같은 조연의 역할을 벗어나 이제 주연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대 말이다.
내가 자라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TV나 영화에 아시아인이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쿵후 영화와 같은 무술을 다룬 액션 영화 혹은 매년 있는 미스 유니버스 방송에서나 아시아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성장기를 거치면서 나는 다르다는 것- 미국에서 베트남 이민자로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통렬하게 깨달았다. 스크린에서는, 나의 삶과 경험이 반영되거나 내게서 열정을 이끌어내는 아시아계 미국인 롤 모델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마거릿 조(Margaret Cho)가 올 아메리칸 걸(All American Girl)이라는 시트콤에 출연하자 어찌나 반가웠는지 아직까지도 기억이 다 난다. (공교롭게도 이 시트콤 또한 프레쉬 오프 더 보트의 방송국인 ABC에서 방영됐다.)
1994년이었다. 당시 나는 로스쿨에 재학 중이었는데, (현재까지도 인종이 진입 장벽이 되는)법조계에 진입해서 성공적으로 경력을 쌓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마거릿 조가 시트콤을 통해 대뷔했을 때, "그래, 지금이야! 드디어 아시안이 미국에서 성공할 때가 온 거야!"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유감스럽게도, 그 시트콤은 고작 한 시즌 방영 후에 시리즈 편성이 취소되며 종영했다. 나를 비롯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우리의 시대'가 너무나 짧게 왔다 갔다고 느껴졌다.
그 후로는, 때마다 한 번씩은 영화나 TV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조이 럭 클럽(Joy Luck Club)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는 조연에 불과했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줄거리에 있어서 곁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WB 네트워크의 참드(Charmed)는 세 마녀가 등장하는 초능력 판타지 드라마인데, 나는 1998-2006년에 방영되던 이 드라마 시리즈의 광팬이었다(지금의 리메이크작도 좋아한다).
하지만 항상 불만스러운 건, 왜 이야기의 배경이 그 많은 동네 중에서도 맨날 샌 프란시스코냐는 거다. 무려 8 시즌 내내 그랬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조연으로라도 고정 출연을 하는 일이 없었다. 어쩌다가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가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건 동양적인 테마가 나올 때 뿐으로(세 마녀가 드래곤 블레이드를 수호하는 도사를 돕는 편), 그게 전부였다.
물론, 아시아계 미국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소수 인종 공통의 문제다. 여전히 다인종 배우나 다문화 작품은 연예계에서 겉만 반지르르한 장식용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리고 할리우드 시상식에서도 재능있는 소수 인종 출신의 배우를 발굴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올해에는 '너무 하얀 오스카( #OscarsSoWhite outcry)'라는 비난이 일었겠나).
그런데다 주연 배우 자리로 말하자면, 연예계 역사를 통틀어 봐도 아시아계 미국인의 등장 기간은 항상 아주 짧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는 뚜렷한 징조로- 루시 리우(Lucy Liu)가 엘리맨터리(Elementary)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인물 역할을 맡았다.
밍나 웬(Ming-Na Wen)은 에이전트 오브 쉴드(Agents of S.H.I.E.L.D.)의 주연으로 발탁됐었으며, 민디 캘링(Mindy Kaling)은 더 민디 프로젝트(The Mindy Project)의 주인공이 되는 기쁨을 누렸다.
무엇보다도, 조기종영되긴 했어도 로맨틱 드라마 셀피에 존 조(John Cho)가 주연을 맡은 것은 인종적 장벽을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드라마로 인해 존 조는 서양 연예계에 이를테면 신비한 유니콘과도 같은 존재로 부상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로맨틱 드라마의 주연이 되다니. 특보 거리다- 아시아 남자도 진짜 세련되고, 매력넘치고, 섹시할 수 있다!
점점 더 아시아인이 미국 연예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이를 보는 시청자에게도 중요한 메세지를 전할 수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도 못할 역할은 없다. 연예계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못할 일이 없다.
아시아계 미국인이라고 다 무술가, 첩실, 사악한 악당인 건 아니다.
또 무조건 외국인 교환 학생이거나, 네일 아티스트거나 괴상한 수학 천재인 것도 아니다.
아시아계 미국인이어도 재미있고 드라마틱한 사람일 수 있다.
카리스마있고 로맨틱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선구자나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
운동선수나 예술가일 수도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변호사, 교사, 경찰관, 사업가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연예계 내의 일로 그칠지 몰라도, 아시아계 미국인 스타의 등장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세상에 못할 일이 없고, 그들에겐 기회가 있으며 어떤 인생이든 열려있다는 믿음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타들은 극 중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아시아계 미국인도 다른 민족의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삶의 형태가 제각각 다양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모든)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데 일조한다.
그래서 나는 프레쉬 오프 더 보트와 얼리전스가 오랫도록 큰 성원을 받으며 방영되기를 응원한다. 두 작품의 성공은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이 영화계에서, 무대에서, 그리고 인생에서 스타처럼 빛날 수 있는 발판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지미 윙
<기사 및 사진: 케이아메리칸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