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피터슨 읽기
양혜원 | IVP | 176쪽
한 감독·PD나 작가의 작품에 특정 배우가 여러 차례 출연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대변하면, 그 배우를 그들의 '페르소나'라고 한다. 배우 이병헌-감독 김지운,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감독 마틴 스콜세지 등이 잘 알려져 있다.
한 외국작가의 작품을 여러 차례 옮기면서 그 작가에 관한 한 전문가 수준에 오른 번역가들도 일종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가면', '그림자' 등을 뜻하는 단어 페르소나(persona)처럼, 번역가는 무대 뒤에서 자신의 사상과 목소리를 감춘 채 원 저자를 빛나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양혜원 번역가는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을 비롯해 '메시지' 시리즈 등 한국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 목사의 저작들을 한글로 옮겨 왔다. 양 번역가는 <현실, 하나님의 세계>, <이 책을 먹으라>, <그 길을 걸으라>, <비유로 말하라>, <부활을 살라> 등 '유진 피터슨의 영성 시리즈' 5권(공역 포함)을 비롯해 피터슨의 회고록 <유진 피터슨(이상 IVP), <교회에 첫 발을 디딘 내 친구에게>,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이상 홍성사)>, <목회자의 영성>, <목회자의 소명(이상 포이에마)> 등 유진 피터슨의 작품 10여권을 번역했다.
그런 양혜원 번역가가 이번에는 커튼을 걷고 무대로 올라와, 유진 피터슨의 세계와 한국에서 유진 피터슨이 읽히는 방식 등을 소개하는 <유진 피터슨 읽기: 삶의 영성에 관하여(IVP)>를 펴냈다. 사모로서 번역 작업을 하면서도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2년 전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포이에마)>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양 작가는, 이 책에서 유진 피터슨의 영성 시리즈를 중심으로 회고록을 참고하여 그의 사상을 정리하고, 한국에서 그가 어떻게 읽히고 있는지 등을 밝히고 있다.
그녀의 열정은 책의 1장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번역하는 동안 자신에게 '목사'이기도 했던 유진 피터슨을 회고록 번역 후 직접 찾아가 만난 것. 원 저자일 뿐 아니라 그를 자신의 '목사'로 여긴 이유는, 그의 작품들을 번역한 14년의 세월이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형성'케 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도나 해 보자는 생각으로 보낸 이메일에, 유진 피터슨은 친필로 '온다면 환영'이라는 답장을 보냈다. 1박 2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의 글로 충분히 그에 대해 알고 있었던 양 작가는 아쉬움을 느끼지 못했다.
"피터슨을 키운 장소에서 그가 느꼈을 세계를 일별했고, 피터슨 부부와의 대화에서 그들의 인격과 만났다. 그것만으로도, 그분들이 지향한 바 대로 일구어 낸 삶의 모습을 충분히 이해하고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 아마 앞으로 그의 글을 읽을 때면, 그는 어느 때보다 더 나의 목사 같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나마 그가 직접 들려준 이야기들은 오래도록 내 삶에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유진 피터슨의 세계는 한 마디로 '기독교적 삶'이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격적이고 관계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구체적 장소에서 구체적 시간을, 인격적이고 관계적으로 살아내는 것이고, 존재와 행위가 일치하는 삶이다. 그가 강조하는 '영성신학'은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이해한 것을 평범한 일상에서 살아내는 것이다.
결국 그는 고귀하고 거룩한 저 높은 무엇이 아니라 '삶'이고, 고담준론 대신 '이야기'로 이를 풀어간다. 그래서 그는 성속의 구분이 가장 심각하게 이뤄지는 현장인 '언어'에 주목했고, 책 두 권을 여기에 할애했다. 언어는 양 작가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2부에서는 한국에서 그가 읽힌 맥락에 대해 나름의 소견을 밝힌다.
양 작가는 "유진 피터슨 사상의 전문가 입장을 자처해서 이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일반 독자들보다 조금은 더 꼼꼼히 그의 책을 읽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차원에서 썼다"고 말했다. 유진 피터슨 입문서로 손색 없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