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속 자존감
조세핀 김 | 비전과리더십 | 248쪽
<땅에서 자라는 하늘 자녀>의 저자 박경이 사모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알파벳을 가르치기 전부터 '너는 특별하단다'라며 자존감부터 가르친다고 한다. 8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 최근 <교실 속 자존감>을 펴낸 조세핀 김 하버드대 교수는, '자존감'의 중요성을 삶으로 체험하고 이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동양 아이가 많지 않던 시절, 영어 한 마디 못하던 그녀는 학교에서 첫 학기에 미술을 제외한 전 과목 학점이 F였다. "영어는 못하지만, F가 'Fantastic'의 줄임말이 아니라는 건 바로 느낄 수 있었어요.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던지, 이후 스스로 '나는 아무 희망이 없는 망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변화된 건 4학년 때 만난 한 교사 덕분이었다. 그 교사는 그녀를 '동양에서 온 아이'가 아니라, 평범한 '한 아이'로 보고 그 내면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 선생님은 제게 자기 자신을 투자하기 시작하셨어요. 시간과 노력, 관심과 에너지를 투자하신 거예요." 그 교사는 쉬는 시간마다 영한사전과 온갖 그림들을 가져다가 그녀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하루는 30-40분간 낱말 퀴즈 총 10문제를 풀게 한 다음, 그녀가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고백한 행동을 했다. "낱말 퀴즈책 맨 위에 '100'과 'Wonderful!'을 아주 크게 쓰시고는 제가 그때까지 본 미소 중에 가장 큰 미소를 지어 보이신 거예요. 마치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빛 같은 힘을 가진 미소였지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순식간에 몰려왔습니다."
이후 그녀는 6개월 만에 영어를 마스터했고, 학교에서도 손을 번쩍 들면서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아이로 바뀌었다. 이후 리버티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대학원에서 전문상담을 공부하고, 버지니아주립대에서 상담가 교육 및 감수로 박사학위를,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았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로서 정신건강 상담사, 대학교 내 폭력문제 전문가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갖고 있으며, 지난 2007년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 후 여러 언론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특히 2008년 EBS TV 다큐프라임 <아이의 사생활-자아존중감> 편에 출연, 자존감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여기까지 들으면, "그건 미국이니 가능한 일"이라고 지레 결론 내릴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신간 <교실 속 자존감>에서 조세핀 김 교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당시 제 선생님은 말 못하는 동양인 어린아이를 돌볼 여력이 전혀 없는 미국 교육 시스템에서도 한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이처럼 상황과 상관없이 교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교육 시스템이 아무리 엉망이고 학부모가 아무리 꼴통이어도, 아이를 진심으로 돌봐 주는 단 한 명의 어른만 있으면 그 아이는 변합니다."
교육학에서는 이러한 사람을 '원 케어링 어덜트(one caring adult)'라고 하는데, 그 역할의 '0순위'가 바로 교사이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들께 부탁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자꾸 마음이 가는 한 아이에게 '원 케어링 어덜트'가 되어 주겠다고 결심해 주세요. 누군가가 희망의 눈으로 한 아이를 바라볼 때, 그 아이는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믿으세요."
<교실 속 자존감>에서 저자는 낮은 자존감으로 나타나는 우울증과 자살, 자해 등 다양한 증상들을 소개하고, 자존감이 무엇이며 학교에서 이것이 왜 중요한지, 자존감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등을 설명한다. 또 조회·종례 10분으로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 교실을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만드는 법, 교사와 학생들 간에 신뢰를 쌓는 법, 상대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왕따를 근절하는 게임 등 교실 속 자존감을 높이고 학생의 상처를 보듬는 다양한 방법을 들려준다.
나중에 그녀는 그 4학년 때 교사와 연락이 닿았고,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 교사는 "지난 35년간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집안 환경이 좋지 않은 아이, 부모가 없는 아이 등을 위해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비단 학교나 유치원 교사 뿐 아니라, 교회학교 교사들도 새길 만한 이야기들이다. 교사는 위대하다. 교사의 시선이 학생을 살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