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바이블교회 남상국 목사
(Photo : 기독일보) 오픈바이블교회 남상국 목사

64세에 신학공부를 시작한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3년 동안 장학금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받아 공부를 마친다. 그 나이에 좀 어렵지만 이것도 불가능은 아니다. 그리고 67세에 교회를 개척한다? 이건 놀랍다 못해 괴이하기까지 한 사실이다. 그 주인공은 남상국 목사. 교회 이름은 오픈바이블교회로 애나하임에 위치해 있다. 개척 멤버는 현재 단 1명이 있는데 벌써 부목사 2명이 함께 하기로 했다.

미국에 이민 온 젊은 남상국은 미식축구와 TV에 미쳐서 살았다. 전형적인 선데이 크리스천에 예배 때도 졸기만 했다. 그는 이런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날 성경을 ‘제대로’ 읽게 되고 이제 성경에 미친 사람이 되었다. 그후 10여 년 동안 성경만을 독파했다. 성경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유명한 목회자들의 설교CD나 강해CD를 구해다가 독파했다. 집안 벽에 성경의 족보를 줄줄이 써 놓고 그것을 외우기도 했다. 신약을 읽을 때에는 혼자서 헬라어를 독파했다.

그리고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 있으면 그림을 그려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만화에 가까운 그의 그림은 나름 일목요연하게 성경의 연대기와 사건, 배경을 해설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그의 ‘낫 놓고 ㄱ자 몰라도 이해되는 성경 공부’다. 그의 성경 공부는 말과 그림으로 재미있게 진행되기 때문에 정말 낫 놓고 ㄱ자를 몰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 목사의 이런 불 같은 열심에 체계성을 더해 준 것은 학업이었다. 그레이스미션대학교(GMU)에서 목회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그는 자신의 성경적 지식에 신학적 체계를 더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해서 목사가 됐지만 개척은 좀 다른 문제 아닐까? 그러나 그는 평신도 시절부터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성경 공부 모임을 인도했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샌타애나 다운타운에서 매달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봉사 사역도 오랫동안 했다. 이 사역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나중에는 한 미국 침례교회에서 사역자로 안수를 주겠다고 할 정도였다.

이번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하자 곳곳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기 시작했다. 골든게이트신학교 학생인 D.K. Lee 전도사가 바로 이 교회에 합류했다. 그는 남 목사가 다운타운에서 노숙자 사역을 할 때 알게 된 인물로, 홈리스 마약 중독자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숙소를 구해 줄 정도로 열정적이다. 또 남 목사로부터 성경공부를 한 타민족들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으로 교재를 번역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한인타운과 애나하임, 밸리, 토랜스 등지에서 성장하고 있는 마가교회(채동선 목사)가 자신들이 사용하지 않는 시간대에 애나하임 성전을 무상으로 빌려 주겠다고 자처했다. 물론, 남 목사가 “무료로 빌리지 않겠다”고 극구 사양해 매달 500달러만 내게 된 에피소드도 있다.

오픈바이블교회 남상국 목사
남상국 목사는 목사가 되기 전부터 노숙자 사역을 하며 이웃을 돕는 일에도 노력해 왔다.

창립예배를 드리기 전, 4월 13일부터 주일예배는 이미 시작됐다. 첫날 예배에는 남 목사의 지인을 중심으로 약 100여 명이 참석해 축하했다. 이날 예배를 마친 후 한 성도는 “내 80 평생에 성경이 이렇게 쉽게 이해된 것은 처음이다”라고 증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 목사는 “나 같은 엉터리 목사에게 교인을 한 명 주시니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교회는 800 S. Harbor Blvd. #220 Anaheim, CA 92805에서 주일 오전 8시, 10시에 두 차례 예배를 드리고 있다. 3부 예배는 오후 3시 6801 Western Ave Buena Park, CA 90621에서 드린다.

오픈바이블교회 남상국 목사
오픈바이블교회가 창립예배에 앞서 매주 모여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

충남 아산 출신인 남 목사는 배재고, 연세대를 졸업하고 도미했다. 이쯤해서 그의 가족 이력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형인 고 남상용 장로는 미시건 한인 역사의 산 증인이다. 4달러를 갖고 도미한 그는 부동산 사업으로 천만장자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미시건대학교에 한국 교육 과정 설립을 주도하고 대학 내 한국박물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그가 4백만 달러를 기부한 남 한국학연구소는 미국 최대의 한국학연구소로 꼽히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선교에도 앞장선 것으로 유명했다. 또 동생 남상만 장로는 한국음식업중앙회장과 한국관광협회중앙회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문의) 949-285-0619, obchurch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