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사람들은 가톨릭 교회가 세부적으로 묘사한 연옥에서의 형벌 기간에 대해 매우 실제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지옥에 대해서는 많이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약 그들이 사제(司祭)에 의해 용서받고 축복을 받은 후 죽으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보장을 받은 것이며, 그 문의 열쇠는 교회가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연옥의 고통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는 그들이 천국에 도착하기 전에, 인간 세상에서 지은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일단 고백성사(告白聖事)가 성례가 되자마자, 사람들은 면죄부를 통해 사후 연옥에서 받는 벌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신곡>의 작가 단테도 그렇게 믿었다.
단테의 신곡(神曲)은 지옥편과 연옥편, 그리고 천국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은 죄에 대한 영혼의 환상과 죄책에서의 정화, 그리고 새로운 삶으로의 상승에 대한 기독교적 풍유다. <신곡>에서 단테는 중세의 천문학과 신학, 철학에 대한 종합적 지식을 동원하고, 놀라운 상상력과 치밀한 구도를 통하여, 초월적인 세계를 여행하는 자신을 그려냈다.
<신곡>에서 단테는 인류를 대표하여 영적 세계를 탐험한다. 처음 두 곳은 이성(理性)의 상징인 로마의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를 받고, 세 번째는 신앙(信仰)의 상징인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는다.
단테가 지옥문 앞에 이르렀을 때, 다음과 같은 말이 어두운 색깔로 쓰여 있었다.
“나를 거쳐서 길은 황량한 도시로
나를 거쳐서 길은 영원한 슬픔으로
나를 거쳐서 길은 버림받은 자들 사이로
나의 창조주는 정의로 움직이시어
전능한 힘과 한량없는 지혜,
태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드셨다.
나 이전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 뿐이니,
나도 영원히 남으리라.
나를 거쳐서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영원히 버려라.”
단테는 베르길리우스(Vergilius)에 인도되어 먼저 상부 지옥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으며, 지옥은 아홉 가지로 구분되어 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중한 죄인이 형벌을 받고 있다. 제1옥(獄)에는 세례를 받지 않은 어린이들과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철학자들(소크라테스나 플라톤 등)이 있었다. 제2옥(獄)에서 단테는 ‘지옥의 재판관’ 미노스를 본다. 이곳에서는 음란함과 애욕의 죄인들이 벌을 받고 있는데, 그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섭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벌을 받는다. 제3옥은 미식가와 폭식가의 지옥이었다. 제4옥에서는 축재할 줄만 아는 인색한 사람들, 그리고 낭비로 일생을 보낸 방탕아들이 다투고 있었다. 제5옥은 분노에 몸을 맡긴 자들의 지옥이었다. 제6옥은 영혼의 불멸을 부정하고 쾌락을 생활 최고의 원리라고 주장한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이 벌받고 있었다.
제7옥에서는 폭력을 행사한 죄인들이, 머리는 황소이고 몸은 사람인 미노타우로스에 의해 감시받고 있었다. 도둑들은 뱀에 물리는 형벌을 받고 있었다. 제8지옥은 열 개의 ‘악의 구렁’으로 열 개의 골짜기로 나뉘어 있었다. 여기서는 인륜관계를 파괴한 기만의 죄를 범한 자들이 벌을 받고 있었다. 제9옥에서는 종교나 정치에서 불화의 씨앗을 뿌린 자들의 영혼이 신체의 여러 곳이 갈라지는 형벌을 받고 있었다. 또 육친을 배신하고 살인을 함부로 한 자들, 동족 학살을 자행한 매국노들, 친지에 대한 배신자들, 그리고 은인에 대한 배신자들이 벌을 받고 있었다. 가장 무서운 형벌을 받는 자는 가룟 유다였다. 그는 악마의 입 속에서 발만 내놓고 있었다. 다른 배신자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도 영원히 씹히는 벌을 받고 있었다.
단테는 지옥 편에서 자기의 스승 뿐 아니라 조국의 지도자들과 교황들까지도, 그들의 죄에 따라 가차 없이 지옥에 집어넣고 있다.
단테에 따르면 연옥은 영혼이 죄악에서 깨끗함을 얻어 천국으로 올라가게 되는 준비 단계이다. 여기서 정화(淨火)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는 영혼들은, 지상에서 이미 회개의 과정을 거쳐 기독교 신앙으로 귀의한 자들이다. 이 영혼들은 이곳에서 소망과 기대 가운데 천국의 도래를 기다리는 것이다.
<신곡>에 따르면,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과 빛의 축복의 영역이다. 단테가 그린 천국의 구조는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월광천(月光天), 수성천(水星天), 금성천(金星天), 태양천(太陽天), 화성천(火星天), 목성천(木星天), 토성천(土星天), 항성천(恒星天), 원동천(原動天), 그리고 지고천(至高天)의 열 개의 하늘로 나뉘어 있다.
<신곡>은 3이라는 숫자의 상징적 구조를 반영하는데, 우선 이 작품이 지옥, 연옥, 천국으로 이루어진 3부작이고, 각 편에서 33곡씩 배치하여 99곡을 이룬다. 또 각 연은 이탈리아어 음절로 이루어지는 삼행시(三行詩)로 구성된다.
밀턴의 <실낙원>이 청교도 신앙을 노래한 것이라면, 단테의 <신곡>은 가톨릭 신앙의 찬가이다. 영국의 문예비평가 토마스 칼라일은 단테의 신곡을 가리켜 “중세기 천 년간의 침묵의 소리”라고 격찬하였다. 괴테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최고의 것”이라고 했다. <신곡>은 1304년 지옥을 구상하면서 1321년 <천국편>을 완성하기까지 단테의 유랑 생활 동안 쓰였다.
/송광택 목사(총신대 평생교육원)